수출통제 확산되는 세계… 전후 공산권 제재에 썼던 시스템 日에 대한 상호주의 대응은 타당… 안보외교가 통상정책 중심 돼야
미·중 무역 전쟁이 개시된 이후 국제 무역질서는 수입 규제에서 수출 통제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지난달 일본이 3개 반도체 소재·부품의 수출 규제를 발표함으로써 촉발된 한·일 무역분쟁도 수출 통제 확산의 일환이다.
수출 통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건설한 국제 무역질서는 전 세계를 포괄한 자유무역질서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GATT(관세무역일반협정)를 통해 서방 내부 자유무역을 강화했고, 또 한편으로는 CoCom(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을 통해 공산권 무역을 통제했다. 전후 국제 무역질서는 서방권 자유무역과 공산권 무역 제재의 양축으로 시작됐다.
1991년 공산권이 붕괴되자 서방국들은 1996년 CoCom을 회원국이 자율적으로 재래식 무기와 이중 용도 품목과 기술의 수출을 규제하는 바세나르협약으로 대체했다. 이 협약 외에도 대량파괴무기와 이의 운반수단인 미사일의 제조, 개발, 사용 또는 보관에 이용 가능한 물품과 기술의 수출을 제한하기 위해 핵공급국그룹(NSG), 호주그룹(AG),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를 운영한다.
현재 이 4대 다자 간 수출 통제 기구에 모두 가입한 나라는 한국, 미국, 일본, 나토 회원국을 포함한 30개국이다. 모두 미국의 동맹이거나 미국에 우호적인 국가이며, 불가리아와 우크라이나를 제외한 나머지 28개국이 OECD 회원국이다.
미국, 일본, 한국은 4대 기구 가입 여부에 따라 '수출심사우대국가' 제도를 운용한다. 일본은 한국을 우대국가 명단에서 제외하기 전 27개국을 우대했는데 모두 4대 기구 회원국이었다.
미국은 일본보다 더 많은 국가를 우대한다. 현재 총 37개국이 전략무역 인허가 1등급(Strategic Trade Authorization Tier 1) 국가로 분류된다.
선진국은 공통적으로 수출 심사에서 우방국은 우대하고, 적성국은 차별한다. 현재 미국이 가장 낮은 등급(4등급)으로 규제하는 국가는 러시아, 베네수엘라, 이란, 북한 등으로 미국과 서방에 가장 적대적인 나라다. 현재 중국의 등급은 3등급에 불과하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화웨이와의 거래를 금지한 것과 별도로 전략물자 수출 규제로 중국을 견제한다.
국제 무역질서가 수출 규제 중심으로 전환됨에 따라 한국은 한·일 분쟁을 양국 관계가 아닌 글로벌 거버넌스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즉, 시스템 개선을 위해 미국이 개입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현행 시스템은 자율 규제 시스템으로 일본 정부의 임의적인 결정에서 볼 수 있듯이 투명한 기준과 규범이 부족하다. 회원국 분쟁에 대한 중재와 조정 장치가 없는 것도 문제다.
한·일 분쟁 자체에 대해서는 정부가 이미 결정한 대로 상호주의로 맞서야 한다. 수출 규제에 대해 그에 상응하는 수출 규제로 대응하는 것이 맞는다. 일본에 큰 피해를 주지 못한다고 해도 한국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어떻게든 대응을 해야 일본과 서로 양보하는 방식으로 타협할 수 있다.
동시에 다른 선진국이 일본을 따라 한국의 등급을 격하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서방 연대에서 한국을 고립시키는 것이 일본의 숨은 의도일 수 있다.
내부적으로는 통상외교 시스
템을 동맹 관리와 전략물자수출통제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 WTO는 G20에서 무용론이 제기되고 미국이 상소기구 위원 임명을 저지함에 따라 연말이면 분쟁조정 기능이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이 일본의 수출 규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외교 무대가 아니다. 자국 우선주의, 기술 보호주의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안보 외교가 통상정책의 중심에 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