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준봉 전문기자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이 판국에 다른 어떤 얘기를 써도 한가할 것 같다. 법무부장관 후보자 문제 말이다. 갈 데까지 간 것 같은 논전에 끼어들어 어느 한쪽을 편들겠다는 게 아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 이쪽이나 저쪽이나 어떤 설득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완고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러고 싶지도 않다. 단순히 장관 한 명의 부적격 여부를 따지는 일을 넘어 내년 총선의 승패, 차기 정권 창출까지 판돈으로 걸고 잔뜩 판을 키워, 밀리면 죽는다는 벼랑 끝 싸움을 벌이는 형국 아닌가.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텍스트의 힘을 빌려 이토록 거칠고 쉽게 불붙는, 원래는 아니었으나 그렇게 변질됐다고 믿고 싶은, 우리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 무엇보다 우리의 정신건강을 위해. 내 안의 타자의 존재 인정 “우리가 다 동시대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92쪽) 우리는 그저 한동안 함께 살 뿐, 내부에서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같은 시간대를 통과한다고 해서 동시대인이라고 할 수 없는데, 바로 그런 점을 놓치고 있어서 우리가 우리의 분란(紛亂)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응준의 말은 어쩌면, 사람들이 각자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는 뜻이다. 다른 시대를 살아가면 시대 감각이 다를 수 있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생각, 가치관이 달라진다. 그러니 조국 문제에 대한 생각이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 환대와 호의로 대응하는 게 마땅한 타자처럼, 외국인처럼 대하자. 그리고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그게 21세기 문명인의 자세인 것 같다. 궤변인가. 두 번째, 우리는 왜 그렇게 조국 후보자 가족이 누린 교육 특별대우에 화를 내나. 기자는 화가 난다기보다 허탈하다. 하지만 사람들의 화를 이해한다. 불법 요소가 있었는지는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법에 의해 가려질 수 있겠지만, 고등학교 2학년 문과생이 인턴 기간 2주 만에 의학논문 1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게 확실해 보인다. 논문 많이 쓰는, 가까운 의사에게 확인한 내용이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에 따르면 인간의 화, 분노에는 인지적 요소가 있다. 단순히 어떤 손해를 입었다고 해서 화가 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보다는, 내면의 판단 기준과 확신에 따라 분노가 인다. 어떤 일의 인과관계에 대한 사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에 끼어든다. 따라서 분노의 내용은 화를 내는 사람만의 독특한 관점을 보여준다는 게 누스바움의 분석이다. (『분노와 용서』) 당신은 어떤 관점을 가진 사람인가. 어떤 점 때문에 조국에 화가 나고, 반대로 공분을 사 마땅한 명백한 부도덕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감싸나. 프랑스 현대철학의 텍스트 이론이 답을 줄 수 있을까. 일본의 진보 지식인 우치다 다쓰루는 저서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에 이런 말을 써놨다. “내가 이야기할 때 내 안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타자입니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고전이나 외국소설, 철학책, 과학책, 역사책 등 평소 읽어둬 나의 피와 살을 이루던 것들이 튀어나와 내 말도 되고 글도 된다는 논리다. 조국 사태에 관한 우리의 소신이나 확신은 어떤가. 그중에 몇 %가 원래 당신 것인가. 믿고 싶은 것, 믿을 만한 어떤 사람이나 매체가 공표한 내용이니까 그냥 따르는 건 아닌가. 시시비비를 따지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매몰되지 말자는 얘기다. 조국 문제 말고도 급한 문제가 많지 않나.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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