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분수대] 스캔들의 덫

bindol 2018. 6. 11. 04:44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별명 ‘다스베이더’(영화 ‘스타워즈’의 악인) 혹은 ‘나쁜 녀석(bad boy)’. 1988년 미 대선에서 조시 HW 부시(아버지 부시)를 당선시킨 일등공신은 37세의 정치 컨설턴트 리 애트워터였다. 상대 후보 부인이 60년대 반전시위 도중 성조기를 태웠다는 루머가 첫 작품이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 처벌법을 둘러싼 애국심 논쟁, 흑인 죄수의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한 TV 광고 등이 뒤를 이었다. 선거 초반 17%포인트 우세를 믿고 “능력으로 판단하라”며 점잔 빼던 민주당 후보 듀커키스는 네거티브 연타에 주저앉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 네거티브 전략이 제대로 먹힌 사례는 2002년 대선 병풍(兵風) 사건이다. 부사관 출신 김대업씨가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서류가 조작됐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이회창 대세론이 침몰했다. 결국 증거 조작에 무고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경기장 문은 이미 닫힌 뒤였다.
 
선거판에서 네거티브 전략은 필요악이다. 위험한 자연과 사투를 벌여온 인간 DNA는 긍정적 정보보다 부정적 정보에 훨씬 더 민감하다. ‘부정성 효과’ 이론이다. ‘수면자 효과(sleeper effect)’도 있다. 자고 일어나면 전날 들었던 소문의 근거는 잊어버린 채 내용만 기억하게 된다. 악사천리(惡事千里)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우리 공직선거법은 선거운동을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네거티브 자체가 불법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흔히 네거티브가 선거 냉소를 심어준다고 하지만 유권자의 관심을 더 키운다는 실증 연구도 있다.  
     
한 유력 도지사 후보의 스캔들이 막판 선거판을 달구고 있다. 3등을 달리던 후보의 네거티브 전략에 여배우, 스타 기자, 인기 작가까지 등장하며 관심을 더 한다. 막바지 표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두고 봐야겠지만 더 궁금한 것은 진실이다. 투표 전 진실이 드러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뒤에도 유야무야 묻혀서는 유권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싶다.
 
스캔들의 어원은 덫이란 뜻의 고대 그리스어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전쟁의 신 아레스가 바람을 피우다 남편 헤파이스토스가 설치해 놓은 그물 덫(skandalon)에 걸려 망신당했다는 신화에서 나왔다. 명쾌하게 풀리지 않은 스캔들은 언젠가 덫이 된다. 네거티브를 당한 사람에게도, 그 전략을 쓴 사람에게도. NLL 파동, 다스 실소유 논쟁, 비선 비리 등 역대 선거의 스캔들이 어영부영 묻혔다가 훗날 정치 상황이 바뀌자 다 폭탄이 됐다. 
 
이현상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분수대] 스캔들의 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