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6일 '필승 코리아'라고 적힌 플래카드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무슨 스포츠 경기 출정식처럼 보였지만 실은 펀드 가입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껏 주식형 펀드에 한 번도 가입한 적이 없다는 문 대통령은 이날 한국 소재·부품·장비 산업, 요즘 유행어처럼 된 '소부장'에 투자하는 '필승 코리아' 펀드에 5000만원을 투자했다. "많은 국민도 함께 참여해서 힘을 보태주길 바란다"고도 했다.
대통령이 주식시장에 참여하고, 국민에게 건전한 투자를 당부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왜 굳이 이 시점인지 짚어볼 게 있다. 문 대통령은 이 펀드 투자를 통해 일본에 많이 뒤처져 있는 '소부장'을 발전시켜, 일본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염원을 표현한 것 같다. 문 대통령은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대일(對日) 항전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고, 이날 작은 '행동'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대통령의 '행동'은 실제 경제에 도움이 될까. '소부장'을 외국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만큼 뒤늦게 따라잡자는 것이 글로벌 분업구조에 깊이 발을 담근 우리나라 산업구조에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우리 산업과 기업을 지킬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지는 차치하고라도 이런 펀드로 우리 '소부장'이 부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건 매우 어리석다. 이 펀드는 운용사 측이 300억원을 집어넣은 채 시작했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10억원도 추가로 모이지 않았다. 몇 백억원이 모인다 해도 삼성전자의 1시간 영업이익에 해당하는 돈으로 소부장 산업에 얼마나 투자해 키울 수 있을 것인지, 그냥 '쇼'처럼 보인다.
정작 이 펀드는 내세운 명분과는 달리 대부분 자금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만약, 이 펀드가 정말 일본산 소부장을 대체할 우리 중소기업에 주로 투자한다면, 펀드 투자자들은 한·일 관계 개선을 바라지 않는 황당한 모순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한·일 간 경제 대결 국면이 지속되고 정부가 "소부장 독립만세!"를 계속 외쳐야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아지고, 반대로 한·일 관계가 개선되면 안 그래도 많이 오른 소부장 기업들의 주가는 하락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필승 코리아' 펀드 투자는 그래서 경제가 아니라 정치다. 지금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경제의 영역에 한없이 밀고 들어오는 정치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내세운 대표적 경제정책들은 모두 정치 과잉, '정치 주도 경제'였다. '소득 주도 성장' '최저임금 1만원' '주(週) 52시간', 법인세 인상, 최근의 '평화 경제'(남북 협력 경제)까지 모두 경제 상황과 실력, 현실적 방법론에 대한 성찰이 매우 부족한 '정치적 이상' 실현론에 가까웠다.
지금 경제인들은 '한·일 대결'이라는 또 하나의 원치 않는 싸움에 말려든 데 이어, 한·일 갈등과 관련, 정부가 미국과도 대립각을 세우면서 자칫 '한·미 대결'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휘말릴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까지 폐기하면서 자존심을 건 싸움을 벌이고, 기업인들을
수시로 불러 모아 독전하는 것은 한국 경제에 큰 독이 될 수밖에 없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필자에게 "세계 10대 경제 강국의 대통령이 배 열두 척을 이끌고 전장(戰場)에 나서는 비장한 장수가 돼서는 안 된다"며 "처절한 싸움에 나서고 싶다면 국가 안보와 경제는 놔두고, 혼자 나섰으면 한다"고 했다. 대통령을 따르고 싶지 않은 기업인들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