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살고 싶은 세계'를 선택하는 일이다. 결혼 행진곡이 끝나면 파트너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거꾸로 내 흠결도 발각된다. 성혼 선언 이후는 낭만이 아니고 현실이다. 그래서 배우자를 고르는 건 '어떤 특별한 종류의 고통을 감수하고 살지 결정하는 문제'라고 한다.
유권자로 대통령을 몇 명 뽑아 보니 결혼과 흡사한 구석이 많다. 그들과 한 지붕 밑에서 한이불 덮고 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선택함으로써 희망 못지않게 특별한 종류의 고통을 공기처럼 마셔야 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고 후회한들 임기가 끝날 때까진 견제할 방법이 별로 없다. 입시 정책부터 일자리, 나라 살림까지 바라지 않은 변화에도 적응해야 한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이 국회에 드물게 가부(可否)를 묻는 제도다. 의혹투성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가족펀드 등을 사회에 환원하겠다' 발표하곤 청문회 예행연습까지 마쳤다. 검찰이 지난 27일 후보자 딸 입시 부정 의혹을 비롯해 후보자 가족의 사모펀드, 웅동학원 관련 의혹 등에 대해 압수 수색을 하면서 그는 사실상 피의자 신세가 됐다.
고려대와 서울대에서는 진상 규명과 후보 사퇴를 요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렸다. 여론이 매우 나쁘다는 것은 임명권자도 안다. 검찰 개혁의 적임자로 그를 지명하는 바람에 생긴 고통이다. 이번에도 "청문회 때 시달린 분들이 오히려 일을 잘한다"는 식의 낭만주의로 넘어갈 수 있을까. 불행이 뻔하다면 식을 올리기 전에 파혼하는 편이 낫다.
이현화가 쓴 희곡 '불가불가'는 역사의 악순환을 부르는 지배 계급의 무능과 부도덕을 풍자한다. 예컨대 임진왜란 전 임금 앞에서 두 대신이 갑론을박한다. 대신 1은 "바다 건너올 화살을 막으려면 10만 병력을 길러야 한다"고 아뢰고, 대신 2는 "10년 후에 올지 모른다는 호랑이가 무섭다고 당장 코밑에 호랑이를 키우잔 말이냐"며 반박한다. 임금이 대신 3에게 의견을 묻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한다. "불가불가(不可不可)…."
임금이 다시 묻는다. "대감, '불가불, 가(不可不, 可)'요, 아니면 '불가, 불가(不可, 不可)'요?" '불가불, 가'는 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는 찬성이고 '불가, 불가'는 절대 반대다. 대신 3은 알쏭달쏭하게 "불가불가"만 되풀이한다. 역사적 위기에서 보신만 추구한 지배 계급과 지식인을 향한 조
롱이다.
법무장관 후보자가 그동안 해온 언행이 자신을 겨눈다. 뱀이 자기 꼬리를 문 모습이다. 그런데 검찰의 압수 수색마저 진의를 의심받고 있다. 후보자가 청문회장에서 "검찰이 수사 중인 사안이라 제가 답변 드리기 곤란합니다"라며 방패로 삼는 건 아닌지 지켜볼 일이다. 시늉뿐인 '불가불가 청문회'는 이제 그만. 정의와 공정이 퇴행하진 않았는지 가늠할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