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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한강대교 위에서 자살 소동을 벌이고 있다. 복권 당첨금을 갖고 가출한 아내를 찾아오란다. 다른 남자가 그 아래로 가더니 불을 피우고 전어를 굽는다. 전어 대가리에서 떨어진 기름이 불에 닿으며 연기가 피어오르자 말없이 전어 안주에 소주 한 잔을 들이켠다. 자살 소동남은 마침 전어의 고장인 경남 사천 출신. 그는 냄새를 참지 못하고 내려와 소주잔을 받는다. 허영만 만화 '식객'에 나오는 장면이다. 집 나간 며느리가 아니라 죽기로 맘먹은 사람도 돌아오게 하는 맛이다. ▶조선시대 서유구는 실용서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서 "귀천이 모두 좋아하고 맛이 좋아 사는 사람이 돈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전어(錢魚)라고 했다. 반면 정약전 '자산어보'에는 그 모양이 화살촉처럼 생겼다고 화살 전(箭) 자를 썼다. 따뜻한 서해·남해에서 주로 잡히는 가을 전어는 2000년대 이후 전국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특히 전남 광양, 경남 창원·사천의 전어 축제가 유명하다.
▶예전 남도에서는 전어가 잡히면 버렸다고 한다. 상품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포구 마을에서는 김치·깍두기 담글 때 넣거나 젓갈로 담가 먹었다. 겨울 과메기처럼 제철 별미이긴 하나 고급 생선은 아니란 뜻이다. 2000년대 중반 양식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자연산이 인기여서 가을이면 남해안 군 통제수역에서 전어잡이 어선들이 단속에 나선 해군과 숨바꼭질을 벌이기도 한다. ▶가을 전어는 지방 함량이 100g당 10g이나 돼 봄 전어보다 세 배 넘게 많다. 그만큼 상하기도 쉬워 옛날엔 내륙지방에서 먹기 어려웠다. 가을 전어는 회나 무침으로도 먹지만 연탄불에 구워 대가리부터 먹는 게 별미다. 젓가락질할 만큼 살이 차지 않는 데다가 잔가시가 많아 통째 꼭꼭 씹어 먹으면 고소하다. 일본에서는 봄 전어를 더 쳐준다. '싱코(新子)'라고 부르는 손가락만 한 생선이다. 우리말로는 '전어사리'라고 하는데 이것을 초밥에 얹어 먹으면 살살 녹는다고 한다. ▶올해 해수 온도가 평년보다 낮아 전어가 줄고 잇단 태풍 때문에 조업 일수도 적어 전어 값이 치 솟고 있다고 한다. 매년 이맘때쯤 판촉 행사가 열리던 대형 마트에서도 전어가 사라졌다. 어떤 수산물 축제에선 양식 전어를 사서 갖다놓아야 할 형편이란다. 시인 정일근은 '가을 전어'에서 "바다를 그냥 떠와서 풀어놓으면 푸드득거리는 은빛 전어들" "맑은 소주 몇 잔으로 우리의 저녁은 도도해질 수 있"다고 읊었다. 올가을 도도해지려면 돈이 좀 더 들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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