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홍 정치에디터 얼굴 없는 예술가로 널리 알려진 뱅크시의 유화 ‘위임된 의회(Devolved parliament)’가 지난 3일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987만9500파운드(약 150억원)에 낙찰됐다. 그림은 첫인상부터 강렬하다. 사람 대신 침팬지 100마리가 영국 하원의사당에 모여 국사를 논하고 있다. 지난 3월 브렉시트 예정일을 앞두고 영국 정치권이 헛심 공방만 거듭할 때 전시돼 “작금의 정치 현실을 단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큰 파장을 불렀다. 이 그림이 당초 예상가보다 5배나 비싸게 팔린 것도 그만큼 세간의 호응이 컸다는 증표다. 대리인의 수준은 곧 국민의 수준 그뿐인가. 지난달 인사청문회에서는 미혼인 여성 후보자에게 출산으로 국가 발전에 기여해 달라거나(정갑윤 의원) 아내 하나도 관리 못 하는 사람이라고 후보자를 질타하는 등(박성중 의원) 상식을 뛰어넘는 성차별적 발언도 끊이질 않았다. 넷 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공식석상에서 한 발언이다. 물론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고 야당은 특히 공격적인 언사가 불가피하다지만 이건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었다. 당 지도부도 이런 논란들이 ‘조국 정국’에 묻혔을 뿐 유권자들 뇌리엔 고스란히 입력돼 있음을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여당은 또 어떤가. 야당의 설화와는 정반대로 존재감 없기가 역대급이다. 집권당 소속에 의원 각자가 헌법기관임을 십분 활용해 이슈마다 전문성이 담보된 소신 발언을 해도 부족할 판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연봉만 축내고 있으니, 말 한마디라도 속 시원히 해주길 바라는 지지자들 보기엔 복장이 터질 일이다. 오죽하면 “더불어민주당 의원 128명보다 유시민 한 명의 목소리가 더 크고 영향력도 세다”는 장탄식이 쏟아지겠는가. 무능한 건가, 무기력한 건가, 아니면 무책임한 건가. 한쪽은 말이 과하고 다른 한쪽은 너무 말이 없으니 국정감사 대신 국민감사라도 해야 할 판이다. 혹자는 뱅크시의 작품을 ‘진화된 의회’로 의역하기도 한다. 뱅크시가 위임민주주의(delegative democracy)라는 공식 용어가 있음에도 굳이 Devolved라는 단어를 쓴 것은 evolved(진화된)를 연상시키기 위한 거라면서다. 그림 속 침팬지 의회가 실제 의회보다 오히려 더 진화된 의회라는 통렬한 풍자가 담겼다는 설명도 곁들여진다. 사전적으론 오역이지만 현실을 보면 이게 더 맞는 해석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국회는 어느 쪽인가. 아무리 D학점짜리 국회라지만 Devolved에서 ‘D’자 하나 빼기가 이리도 힘든 일인가. 이래서는 F학점 받고 낙제하기 십상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국가의 주인인 국민은 대리인에게 권한과 책임을 ‘위임’한다. 그런 만큼 대리인의 수준이 곧 국민의 수준이 된다. 대리인이 욕하면 국민 얼굴에 침을 뱉는 거나 마찬가지다. 대리인이 수준 이하의 엉뚱한 소리를 하면 국민 망신만 시키는 거다. 대리인이 입은 꽉 다물고 자기 보신에만 급급하면 국민은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기나긴 조국 정국이 일단락되면서 이제 드디어 국회의 시간이 왔다고들 한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은 결코 많지 않다. 곧 총선 공천이 시작될 터. 진화된 의회를 향한 유권자 심판의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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