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주 논설위원 숙이는 듯하더니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정부의 일자리 자화자찬 얘기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기자 간담회에서 “국민이 체감할 만큼 노력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일자리 아니었을까”라고 한 게 지난 10일이다. 그러고 단 사흘 만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은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되고 있다”는 발언을 줄줄이 쏟아냈다. “10월 취업자가 1년 전보다 41만9000명 늘었다”는 통계청 발표에 힘을 얻었다. “60세 이상 어르신 일자리가 늘어난 것만 41만7000개”라는 지적엔 “그럼 빈곤 노인을 방치하자는 거냐. 노인 일자리도 중요한 정책”이라고 맞선다. 정부 주장은 일리 있는 것일까. 일단 팩트체크 해봤다. 불가피하게 숫자가 많이 등장하는 점은 양해하시기를. 정부, 일자리 통계 자화자찬 해석 최근엔 주로 “주당 36~44시간이 늘고 있다”고만 한다. 그러나 고개를 약간만 수그려 통계표 아래 칸을 제대로 읽었다면 이런 얘기가 쉽사리 나올 리 없다. 지난달 36~44시간은 55만 명 늘었지만, 바로 밑 칸 ‘45~51시간’은 31만 명, 다시 그 아래 칸 ‘54시간 이상’은 43만 명 줄었다. 전체 풀타임 근로자는 약 19만 명 마이너스다. 종합하면 이렇다. ‘풀타임 일자리 전체는 크게 쪼그라들었다. 다만, 강력한 주 52시간 근로제 때문에 장시간 근무가 줄어 36~44시간이 증가했다.’ ② “노인 일자리도 중요하다”=아니라는 사람 없다. 언론이 “노인 일자리만 많이 늘었다”고 하는 건 “어르신 일자리 필요 없으니 집어치우라”는 게 아니다. “청년·중장년 일자리가 살아나야지, 60세 이상이 주로 증가한 것을 두고서 ‘고용 호전’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뜻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노인 일자리 만들지 말라는 소리냐”며 발끈하는 듯한 투다. ‘달을 가리키는 데 손가락만 보는’ 격이다. 내친김에 연령별 일자리를 더 살펴보자. 50대 취업자는 늘었다. 전 정부가 정년을 60세로 늦춘 덕이 크다. 40대가 타격을 받은 건 문재인 정부도 안타까워하는 부분이다. 30대는 나름 호조다. 인구 감소보다 취업자가 덜 줄었다. 아킬레스건인 청년층(15~29세)은 늘어난 취업자의 상당수가 숙박·음식업에 들어갔다. 딱 봐도 아르바이트다. 일자리에 관한 한, 30대 말고 이 정부는 별로 할 말이 없어 보인다. ③ 고용률 호조=얼핏 수치만 보면 맞다. 이면의 실상은 어떨까. 주당 17시간 미만 일하는 ‘쪼개기 일자리’만 잔뜩 늘었다(10월 34만 명 증가). 그래서 이런 추론이 유력하다. ‘근로 시간이 줄어 가구 소득에 문제가 생겼다. 벌충하러 놀던 가족이 나섰다. 쪼개어 남은 일자리를 이들이 채웠다. 결과적으로 고용률은 올랐다.’ 하지만 이래서는 근로소득이 늘기 어렵다. 수입 벌충이 필요한 저소득층일수록 더 그렇다. 쪼개진 나머지 일자리를 구해야 소득이 제자리고, 못 구하면 구멍이 난다. 바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이다. 칼바람 몰아치는 고용 상황은 소상공인들의 가슴마저 저며 놓았다. 서울 동작구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A씨(45)는 이렇게 말했다. “최저임금 때문에 한 명 있던 직원을 내보냈다. 이젠 손님 없을 때 넋두리 들어줄 사람이 없다. 우울하다.”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면서 정부는 고개를 낮춰 소상공인들과 저소득층에 미칠 영향을 살피지 않았다. 결과 수치를 볼 때도 입맛에 맞는 것 말고는 고개 숙여 통계표 한 칸 아래를 보려 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 웃음 짓는 건 촛불 청구서를 줄기차게 들이미는 귀족노조뿐이다. 그래서 이젠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패러디한 냉소마저 나온다. “사람이 먼저다. 어떤 사람들은 더 먼저다.” 권혁주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권혁주의 시선] 어떤 사람들은 더 먼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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