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중국인들로부터 "홍콩 사람들은 식민지 노예 근성에 찌든 속물"이라고 비난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 민족적 자존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외세 압박과 경제적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얄팍하고 나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홍콩인들에게 중국 대륙이 6개월째 혼이 나고 있다. 중국 대륙으로 범죄인을 송환할 수 있도록 한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시작된 홍콩 시위 사태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것이다. 중국과 홍콩 당국은 지난 9월 100만명이 넘는 사상 최대 시위 인파에 깜짝 놀라 법 개정안을 전격 철회했다. 이미 결정한 방침을 되돌리는 것은 공산당 통치가 강력한 대륙에선 거의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사태는 수습되지 않고, 민주화 요구는 더 거세지고 있다. 홍콩의 계속된 불안정에 중국 내에서는 시진핑 주석 책임론까지 거론된다.
쉽지 않은 무력 개입… 진퇴양난 中 정부
중국은 최고지도부(공산당 상무위원회)의 일원인 한정 부총리를 두 차례나 현지로 파견하고 무장경찰 병력을 대거 증원하며 무력시위를 벌였지만 직접 개입은 삼갔다. 중국군이 개입하면 중국 외자 유입의 주요 통로이자 최대 위안화 역외 거래소가 있는 국제 금융도시 홍콩의 위상은 뿌리째 흔들린다. 미국이 홍콩정책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관세, 무역, 투자금융, 비자 발급 분야의 특별 대우도 사라질 것이다. 당장 홍콩을 대신할 도시가 없는 중국으로서는 자멸의 길이 된다.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약속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뒤집는 것으로, 국제적 고립이 불가피해진다. 시진핑 주석이 연일 공식석상에서 강력 대응을 강조하는 것도 직접 개입하겠다는 뜻이라기보다는 홍콩 당국에 사태 조기 수습을 요구하는 의미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
홍콩 사태는 작년 대만에서 발생한 홍콩 여성 살해 사건에서 비롯됐다. 20대 홍콩 연인이 대만으로 여행을 갔다가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고 혼자 홍콩으로 돌아온 사건이다. 대만 당국은 이 사건 용의자인 홍콩 남성의 인도를 요구했지만, 법적 근거가 없었다. 홍콩 범죄인 인도법은 중국, 대만, 마카오 등 '하나의 중국'을 구성하는 지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