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최유식의 아웃룩] 中 송환법의 진짜 타깃은… 홍콩 내 미국의 첩보 조직

bindol 2019. 11. 20. 05:20

영국, 홍콩 반환 前 중국을 홍콩 범죄인 인도 대상국에서 제외
2010년대 초 중국서 美 CIA 공작원 30명 체포돼 처형·수감
中 매체 "미·중 경쟁 과정서 발생"… 멍완저우 체포 반격 분석도

최유식 중국전문기자
최유식 중국전문기자

베이징의 중국인들로부터 "홍콩 사람들은 식민지 노예 근성에 찌든 속물"이라고 비난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 민족적 자존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외세 압박과 경제적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얄팍하고 나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홍콩인들에게 중국 대륙이 6개월째 혼이 나고 있다. 중국 대륙으로 범죄인을 송환할 수 있도록 한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시작된 홍콩 시위 사태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것이다. 중국과 홍콩 당국은 지난 9월 100만명이 넘는 사상 최대 시위 인파에 깜짝 놀라 법 개정안을 전격 철회했다. 이미 결정한 방침을 되돌리는 것은 공산당 통치가 강력한 대륙에선 거의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사태는 수습되지 않고, 민주화 요구는 더 거세지고 있다. 홍콩의 계속된 불안정에 중국 내에서는 시진핑 주석 책임론까지 거론된다.

쉽지 않은 무력 개입… 진퇴양난 中 정부

중국은 최고지도부(공산당 상무위원회)의 일원인 한정 부총리를 두 차례나 현지로 파견하고 무장경찰 병력을 대거 증원하며 무력시위를 벌였지만 직접 개입은 삼갔다. 중국군이 개입하면 중국 외자 유입의 주요 통로이자 최대 위안화 역외 거래소가 있는 국제 금융도시 홍콩의 위상은 뿌리째 흔들린다. 미국이 홍콩정책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관세, 무역, 투자금융, 비자 발급 분야의 특별 대우도 사라질 것이다. 당장 홍콩을 대신할 도시가 없는 중국으로서는 자멸의 길이 된다.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약속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뒤집는 것으로, 국제적 고립이 불가피해진다. 시진핑 주석이 연일 공식석상에서 강력 대응을 강조하는 것도 직접 개입하겠다는 뜻이라기보다는 홍콩 당국에 사태 조기 수습을 요구하는 의미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

홍콩 사태는 작년 대만에서 발생한 홍콩 여성 살해 사건에서 비롯됐다. 20대 홍콩 연인이 대만으로 여행을 갔다가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고 혼자 홍콩으로 돌아온 사건이다. 대만 당국은 이 사건 용의자인 홍콩 남성의 인도를 요구했지만, 법적 근거가 없었다. 홍콩 범죄인 인도법은 중국, 대만, 마카오 등 '하나의 중국'을 구성하는 지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홍콩 정부는 올해 초 이 사건 해결을 명분으로 범죄인 인도법 개정에 나섰다. 문제는 이 법 개정으로 범죄인을 중 대륙으로 송환할 수 있게 되면, 홍콩 반환 당시 중국이 약속한 홍콩의 자치권이 크게 위축된다는 점이다. 홍콩 반중 인사들이 줄줄이 송환 대상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영국은 홍콩 반환에 앞서 사법 제도가 다르고 인권 보호 수준이 낮은 중국 대륙으로 홍콩 거주민이 송환되지 않도록 양측 사법 체계 사이에 '방화벽(firewall)'을 쳐두었다. 중국을 범죄인 인도 대상국에서 제외한 것이다.

중국의 숨은 의도는 서방 첩보망 와해

중국 당국이 단순히 살인범 대만 송환 문제 해결을 위해 이 법에 손을 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더욱이 올해는 중국 건국 70주년으로 스스로 분란을 만들어 잔치 분위기를 망칠 이유도 없었다. 뭔가 다른 긴박한 사연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중국 군사 전문 매체에서는 이번 사태가 미·중 경쟁 과정에서 발생했으며, 중국이 홍콩 내 서방 정보망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중 스파이 전쟁의 실상은 2017년 뉴욕타임스의 보도로 전모가 처음 알려졌다. 지난 2010년 말부터 2012년까지 중국 정부 관원을 포함해 중국 내에서 활동하던 CIA 공작원 30명이 중국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에 체포돼 처형당하거나 수감됐다. 중국 당국은 경고의 의미로 정부기관 뜰에서 다른 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파이 용의자를 총살하기도 했다고 한다. 미국은 수년간의 조사를 거쳐 작년 1월 과거 CIA 요원으로 활동했던 홍콩 출신 미국인 리전청(李振成)이 중국 당국에 포섭돼 CIA의 중국 공작원 명단을 유출한 사실을 밝혀냈다.

중국 군사 전문 매체 시루왕(西陸網)에 따르면 중국 내 스파이망이 와해된 이후 미국은 홍콩으로 거점을 옮겼다. 2015년 주중 미국 대사관에 있던 CIA 요원들을 철수시키고, 홍콩에 있는 미국영사관 내 CIA 지부를 대폭 확대했다는 것이다. 홍콩이 새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은 CIA 요원들이 체포되더라도 중국으로 송환되지 않도록 해주는 홍콩의 범죄인 인도법이다. 시루왕은 "2014년 우산혁명부터 이번 홍콩 사태까지 그 뒤에는 CIA 등 서방 정보기관의 검은 손이 있다"며 "홍콩 범죄인 인도법 개정으로 미국, 대만 첩보기관의 퇴로를 차단해야 한다"고 했다. 베이징의 한 국제정치 전문가도 "현 단계 미·중 경쟁의 핵심은 정보 전쟁"이라며 "중국의 목표는 홍콩 내 서방 스파이 조직의 와해"라고 했다.

대만 언론 "멍완저우 체포에 대한 반격"

화웨이 창업자의 딸이자 글로벌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멍완저우(孟晩舟)가 캐나다에서 체포된 데 대한 반격을 위해 중국이 범죄인 인도법 개정을 서둘렀던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멍완저우가 미국의 범죄인 인도협정 체결국인 캐나다에서 체포되자, 그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도 홍콩에 체류하거나 드나드는 서방 인사 들을 체포해 대륙으로 송환할 법적 올가미를 마련하려 했다는 것이다. 대만 상바오(上報)는 "범죄인 인도법 개정은 멍완저우 체포에 대한 반격 차원에서 중국 정부가 추진한 것"이라며 "관료 출신으로 정치적 수완이 부족한 캐리 람 행정장관이 고자세로 법 개정을 밀어붙이다 대규모 유혈 충돌 사태까지 빚어지자 중국 당국이 부득이하게 법 개정을 포기했다"고 보도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20/201911200004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