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 대통령 암살범과 위대한 연극배우

bindol 2019. 11. 21. 04:54

부스극장 사진

뉴욕 브로드웨이에 있는 부스극장 (Booth Theatre·사진).
극장 이름은 19세기 미국 연극계의 최고 가문으로 불렸던 부스가(家) 형제의 엇갈린 운명과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남북전쟁이 끝난 5일 후인 1865년 4월 14일 워싱턴의 포드극장에서 링컨 대통령이 암살됐다. 암살범 존 윌크스 부스는 부스가의 막내아들이었다. 이 사건은 전 미국을 충격과 슬픔으로 빠트렸다. 여배우 클래라 모리스는 '무대 위의 인생'이라는 에세이에서 존 윌크스에 관한 기억을 서술했다. "너무나 젊고 총명하며 유쾌하고 친절했던 청년… 남녀 모두가 사랑하고 흠모하던 멋진 청년… 모든 이웃 주민, 심지어는 모든 이웃의 강아지들도 좋아하던 그 청년이 대통령을 암살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존 윌크스는 볼티모어에 있는 가족묘에 묻혀 있지만 그의 비석엔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다. 방문객들은 그 비석 위에 링컨의 얼굴이 새겨진 페니(penny) 동전을 올려놓는다.

에드윈 부스는 당시 많은 배우가 '로미오'와 같은 꽃미남 역할을 선호할 때 '햄릿'과 같은 심각한 셰익스피어 연기로 우뚝 섰다. 유명 연극배우였던 아버지 주니우스 브루투스 부스의 명성을 넘어서며 미국 최고의 비극 배우가 되었다. 1866년 1월 에드윈 부스는 무대에 섰다. 수백 번도 더 맡았던 햄릿 역으로. 하지만 연기를 시작하지 못했다. 몇 개월 전 대통령을 암살한 친동생 때문이었다. 일 년 전만 해도 같이 무대에서 줄리어스 시저를 함께 연기했던 동생이다. 죄책감과 분노, 슬픔, 가문의 영광, 형제를 잃은 상실감의 복잡한 심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아무 말도, 어떤 움직임도 없는 상태로 몇 분간 침묵이 흘렀다. 관객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고 전원이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계속된 관객의 기립 박수에 그는 비로소 연기를 시작했다. 뉴욕의 작은 공원 그래머시 파크 안에는 햄릿으로 분장한 에드윈 부스의 동상이 서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를 암살범의 형이 아닌 위대한 배우로 기억하고 있다. 에드윈 부스가 1869년 세운 부스극장은 이런 이야기를 품은 채 앞으로도 오랫동안 서 있을 것 같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23/20191023037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