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卽是空 空卽是色

불교의 경전은 8만 4000에 달합니다. 어마어마하죠. 그걸 270자로 요약한 게 『반야심경』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법의 골수가 『반야심경』에 다 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 『반야심경』도 딱 여덟 자로 요약할 수가 있죠.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그런데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말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지끈합니다. “색은 뭐고, 공은 또 뭐야?”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 주로 이런 반응이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은 더 황당하게 여기죠. 과연 그럴까요. 살아있는 물고기를 손에 쥐면 어떻게 되나요? 펄떡펄떡 뛰죠. 마찬가지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도 펄떡펄떡 뛰면서 슉슉하고 숨을 쉬는 말입니다. 살아있단 말이죠. 이제 두 손으로 물고기를 잡아봅시다. 그리고 나의 일상을 향해 휘~익 던져 보세요. 지지고 볶는 일상 속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어떻게 헤엄을 치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 풍경 하나 먼저 색즉시공입니다. 바쁜 아침 출근길, 옆 차가 느닷없이 끼어들죠. 경적을 울립니다. 순간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옵니다. 그 화가 색입니다. 그런데 색을 붙들면 항상 나만 괴롭습니다. 게다가 옆 차도 분명 급한 이유가 있겠지란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브레이크를 밟고 양보를 해줍니다. 순간 화는 사라지고 맙니다. 어디로 갔을까요. 공으로 들어간 겁니다. 색이 공이 되는 순간이죠. 그게 색즉시공입니다. 컴퓨터로 따진다면 일종의 포맷입니다. 여기서 질문이 날아옵니다. 왜 포맷을 해야 하는가? 이유는 간단합니다. 화가 난 마음을 계속 붙들면 어찌 될까요. 생각해 보세요. 회사에 가서, 점심을 먹고, 퇴근을 할 때까지 아침의 짜증을 안고 있다면 색즉시공이 될 수가 없습니다. 왜일까요? 내가 계속 색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색이 쌓이고 쌓여서 나의 업(業)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툭, 툭 내려놓는 겁니다. 출근길의 짜증뿐이 아닙니다. 칭찬 후의 뿌듯함도, 이별 뒤의 아쉬움도, 성공 뒤의 자만심도 툭, 툭 내려놓는 거죠. 그렇게 마음이 포맷될 때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출렁이는 창조의 바다로 다시 들어가는 겁니다.   다시 볼까요. 화를 내려놓는 순간을 들여다보세요. 더 이상 옆 차에 마음이 묶이지 않게 되죠. 그래서 공간이 생기는 겁니다. 이젠 어떠한 마음도 일으킬 수 있는 창조의 공간이 내 안에 생기는 거죠. 그렇게 포맷한 마음의 자리가 공입니다. ​ 풍경 둘 그럼 공즉시색은 뭘까요. 간단합니다. 공이 색으로 화(化 )하는 거죠. 지지고 볶는 마음이 아니라 포맷된 마음에서 생각과 행동을 내는 거죠. 거기에는 출근길의 짜증, 남편과의 말다툼, 아이의 성적표를 보고 난 실망감 등으로 인한 연쇄 파도가 없습니다. 짜증의 연장선이 아니라 내게 정말 필요한 마음을 골라서 쓰는 겁니다. 오늘 회의에선 어떤 아이디어를 낼까? 올 추석 부모님 선물로 뭐가 좋을까? 어제 다퉜던 직장 동료에게 어떻게 사과하지? 결국 출근길의 생산성이 달라지는 겁니다. 출근길뿐만 아니죠. 나의 하루, 나의 일상, 나의 삶에 대한 생산성이 달라지는 거죠. 온갖 색깔과 마음으로 그리고, 다시 백지로 돌아가고, 다시 마음을 그리고, 다시 백지로 돌아가고, 그렇게 창조와 포맷, 창조와 포맷을 거듭하며 마음을 굴리는 일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입니다. 자연을 보세요. 저 앞의 나무와 새, 바람과 구름, 산과 들도 매 순간 색으로, 또 공으로, 색으로, 또 공으로 몸을 바꾸며 존재합니다. 그래서 여름이 간 자리에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간 자리에 겨울이 오는 겁니다. 이 거대한 우주가 그렇게 숨을 쉬는 거죠. 그호흡이 바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입니다. < ‘현문우답, 인생보다 일상이 버거운 당신에게(백성호, 중앙books, 201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