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23〉 1957년 대륙이 3차 국·공합작을 제안하자 대만은 밀사를 파견했다. 배경에 대만의 반미 풍조가 있었다. 1954년 12월 2일, 자유중국 외교부장 예궁차오(葉公超·엽공초)와 미 국무장관 덜레스가 중미 공동방어조약에 서명했다. 양국은 맹방(盟邦)이라 불러도 좋을 사이가 됐다. 조약에 의해 미국은 대만에 주둔군 파견이 가능했다. 대만주재 미국대사 란킨(Rankin)은 대륙이 홍색으로 변하기 전, 상하이와 홍콩 총영사를 역임한 중국통이었다. 중국인이라면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 본국에 건의했다. “파견할 군인과 군속은 적을수록 좋다. 많을 경우 타이베이가 식민지 도시처럼 보일까 우려된다.” 미국 정부는 란킨의 건의를 채택하지 않았다. 한국 전쟁 후 대만 주둔 미군 급증 1950년 6·25전쟁으로 미 7함대가 대만해협을 봉쇄했을 때 대만 거주 미국인은 수십 명에 불과했다. 3년 후 정전 무렵엔 1000명으로 늘어났다. 외교, 경제, 군사업무 종사자가 대부분이었다. 냉전이 본격화되자 미국인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1957년 1월, 1만명을 초과했다. 미국의 필리핀 통치 시절보다 많은 숫자였다. 타이베이는 미군의 천국이었다. 유원지, 찻집, 이발소, 온천장 할 것 없이 미군들이 득실거렸다. 젊은 여인들은 극단의 선택을 주저하지 않았다. 해 질 무렵, 예쁜 여인 태운 인력거들이 타이베이 거리에 줄을 이었다. 온갖 꼴불견이 벌어졌다. 미련해 보이는 미군 병사가 두 명의 중국 여인과 온천 욕조에 퍼져 앉은 사진이 잡지에 실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장제스(蔣介石·장개석)는 울화통이 터졌다. 미군과 산책하는 중국 여인 볼 때마다 가슴을 쳤다. 미국의 원조에 의지하다 보니 속수무책이었다. 원래 콜라를 좋아했지만 열 받으면 숨도 안 쉬고 들이키던 습관이 도졌다. 장징궈(蔣經國·장경국)는 아버지보다 더했다. 미국 군사고문단과 회의 마치고 돌아온 날은 이를 악물었다. 헤겔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없다는 것이 인류가 역사에서 얻는 유일한 교훈이다.” 다들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1957년 3월 20일, 미군 하사관 레이놀드의 총기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2개월 후, 타이베이의 미국 군사법정도 사고를 쳤다. 중국인 류즈란(劉自然·유자연)을 살해한 레이놀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만이 들썩거렸다. 이튿날 오전 10시 15분, 류즈란의 부인이 중학생(우리의 고등학생. 당시 대만의 중학생은 자동으로 장징궈가 단장인 구국단 단원이었다) 몇 명과 타이베이의 미국대사관 앞에 나타났다. 영어와 중국어로 "살인자 무죄? 나는 항소한다! 나는 항의한다!”라고 쓴 팻말을 대사관 담에 붙여놓고 말없이 서 있었다. 행인들이 걸음을 멈췄다. 대사관 직원이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자”며 면담을 요청했다. 부인은 입을 다물었다. 앞만 응시했다. 당시 대만은 계엄시대였다. 항의나 시위를 허락하지 않았다. 타이베이 시 경찰국장이 부하들과 현장에 나타났다. 묘한 질문을 던졌다. "사건을 만들 생각인가?” 부인이 입을 열었다. "남편이 미군 손에 죽었다. 자국 영토에서 무언의 항의가 불법인가?” "대사관에 들어가서 저들과 대화를 나누도록 해라.” 부인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절대 안 들어간다. 문밖은 중국영토다. 나는 여기 서 있을 권리가 있다. 저들의 영역에 발을 디디지 않겠다.” "항의의 뜻을 우리 외교부에 전하면 외교부가 대신 처리해 줄 수 있다.” "외교부는 국가를 대표한다.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 내 행동은 개인의 항의일 뿐이다. 외교부를 통하고 싶지 않다.” "부인의 비애를 우리는 이해하고 동정한다.” "내 개인의 비애일 뿐 아니라, 전 중국인의 비애다.” 국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떴다. 측은한 마음이 들었던지, 내버려 두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는지는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알 길이 없다. 부인은 마이크에 대고 대성통곡했다.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내가 오늘 여기 온 것은 남편의 죽음에 항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중국인을 위해 항의한다. 미국인이 만족할만한 답을 주지 않으면 이 자리를 떠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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