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태평로] 나는 재난지원금을 기부하지 않았다

bindol 2020. 5. 21. 05:35

이 정부 돈 씀씀이 믿고 기부하는 게 탐탁잖았는데 윤미향 사건 터졌다
자영업자 도우려 직접 돈 쓴다

한현우 논설위원

 

재난지원금을 받을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코로나 사태로 딱히 가계가 어려워졌다고 할 수 없다. 나랏돈을 받아야 할 만큼 형편이 어렵지도 않다. 소득 하위 70%에 재난지원금을 준다면 현금 살포에 인이 박인 이 정권의 무능을 탓할 문제일 뿐 '왜 80%가 아니고 70%인가'를 따질 일은 아니었다. 70%에 돈을 준다면 71%에 해당하는 사람은 돈을 못 받게 되는 정책이 합리적인가 생각해볼 뿐이었다.

어느 날 전 국민에게 돈을 주겠다는 정책이 발표됐다. 여당이 선거에서 압승한 직후였다. 다 주되 사회 지도층과 고소득자들에게 기부를 유도하겠다고 했다. 실로 대단한 수(手)였다. 청와대 앞 어느 와인바 또는 일식집에서 업무 추진비를 써가며 궁리하다 나온 아이디어인지 모르지만, 아무도 생각지 못했고 누구도 반대하기 어려운 묘책이었다. 어떤 난국 속에서도 평등과 공정과 정의를 독차지하고야 마는 권력의 집요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위 70%에 돈을 뿌리자는 데 의견이 모였을 때 권력 내 누군가가 "그건 평등하지 않다는 말을 듣기 쉽다"고 제동을 걸었을 것이다. 전 국민에게 돈을 주면 되지만 그러면 권력 눈에 꼴 보기 싫은 사람들도 다 받게 된다. 이건 또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사회 지도층과 고소득자 기부' 아이디어를 내자 다들 박수 치며 환호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것으로 포장하는 데 딱 알맞기 때문이다.

앞으로 몇 달을 버틸지 모르는 중소기업과 종업원을 전부 내보내고 혼자 가게를 지키는 식당 주인에게 돈 100만원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몇 조원을 풀어 공평하게 나눠 가지는 데는 성공했다. 그런데 전 국민이 몇 십만원씩 용돈을 받으면 코로나 위기가 극복되나. 그 돈 나눠 주느라 진 나랏빚은 앞으로 누가 어떻게 갚을 것인가.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매듭을 권력은 정치라는 칼로 싹둑 잘라서 마치 해결한 시늉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한술 더 떠 국민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앞으로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생기는 모든 부작용은 '국민이 생각보다 기부를 많이 하지 않아서'가 될 것이다.

어쨌든 갑자기 정부의 지원 대상이 되어 돈을 받게 된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이모저모 따질 것 없이 그냥 신청하지 않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윤미향 사건이 터졌다. 나는 재난지원금을 신청하고 한 푼도 기부하지 않았다.

이 정권과 그 주변에 있는 인물들의 '좋은 것 독차지'는 그악스러울 정도다. 항일·반일 투사 다 차지하고 맛있는 일본 과자도 사다 먹었으니 그렇지 않은가. 아흔 살 넘은 할머니들 쉼터를 제일 멀고 가기 힘든 시골에 사서 텅 비워놨다. 그 집 관리인으로는 친아버지를 고용했다. 일은 난장판으로 해놓고 그 집 이름에 '평화와 치유'라는 말을 들씌워놨다. 그러고는 한다는 변명이 "사려 깊지 못했다고 대외적으로 천명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이다. "잘못했습니다" 대신 "사려 깊지 못했다"고 해도 무척 정치적인 수사인데, 천명(闡明)씩이나 그것도 '대외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니. 말의 신기원을 이룬 조국씨가 서러워할 경 지다.

원래 정부와 지자체는 기부금을 받을 수 없다. 그 법까지 바꿔가며 재난지원금 기부를 받고 있다. 이 정부 돈 씀씀이를 믿고 기부하는 게 영 탐탁지 않아 머뭇거리던 차에 윤미향씨를 보고 기부하지 않기로 했다. 요즘 나는 재난지원금으로 동네 식당과 빵집, 호프집에 열심히 드나들고 있다. 코로나에 허덕이는 자영업자들을 직접 돕는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20/20200520046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