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노트북을 열며] 긴급재난지원금, 분노의 온도

bindol 2020. 5. 28. 05:23

전영선 산업1팀 차장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기 시작한 지난 13일부터 약 보름동안 각종 논의가 쏟아졌다. 총예산 약 14조3000억원을 들여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라, 준비된 매뉴얼은 없었다. 지적된 문제점 중 어떤 것은 정부를 이해할만했다. 이건 진짜 아니다 싶은 건, 즉 분노의 온도가 높았던 건은 짚어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가 만날 마지막 재난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으려면, 늘 그렇듯이 베스트보다는 워스트를 꼽는 것이 현명하다. 다음엔 이것만 잘해도 우린 한 단계 성장한 것이니까.

#분노온도 100, 세대별 지급: 어머니가 세대주라 긴급재난지원금은 구경도 못했다. 내게 ‘조회할 권리’조차 없다는 사실엔 좀 당황했다. 세대를 기반으로 한 각종 정책은 낯설지 않다. 국가가 선호하는 ‘정상가구’의 모습은 부모와 어린 자녀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화목한 ‘비둘기 가족’이라는 게 기본 전제다. 현실은, 복잡한 집이 훨씬 많다. 이혼가정인데 자녀가 전 배우자 건강보험료의 피보험자로 돼 있어 양육자가 자녀 몫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이의신청이 번거로워 그냥 포기했다는 후일담이 쏟아진다. “고작 몇십만원으로 가족 간에 싸우냐”는 사람도 물론 있다. 하지만 단돈 몇만원이 절실한 사람이 증가해 지급하기 시작한 게 바로 이 지원금이다. 세대가 아닌 개인별 지급이 답이다. 또 재난지원금을 계기로 낡아빠진 세대 중심 복지 시스템도 재검토되어야 한다.

긴급재난지원금. 그래픽=신재민 기자

#분노온도 70, 사용처 희비: 소비자는 사용할 수 있는 곳을 귀신같이 찾아내 어떻게든 쓰고 있다. 현금화해 쌈짓돈 만드는 방법이 자랑스럽게 공유된다. 즉, 당초 우려한 소비자 혼란은 적었다. 하지만 여전히 형평의 문제가 걸려있다. 14조원 넘게 풀리는 데 직접 수혜를 입은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은 각각의 방법으로 표정 관리 중이다. 카드사가 업체를 어떤 업종으로 분류했는지에 따라 운명이 바뀌기도 했다. 사용 제한업종을 정해야 한다면 카드사 분류가 아닌 보다 정확한 기준을 제시했어야 했다.

 



#분노온도 60, 돌아올 고지서: 분노라기보다 걱정에 가깝다. 오늘의 소고기는 내일의 계산서다. 우리 국력이 사상초유의 재난에 14조원을 쓸 정도는 된다는 말도 맞아 내심 감사하다. 그런데 해결 방안은 결국 세금을 더 내고 나랏빚을 더 지는 수밖에 없다는 것도 현실이다. 아마도 부자가, 대기업이 더 많이 부담을 지라고 할 것이고, 이들은 이들대로 ‘앓는 소리’를 할 것이다. 곧 돌아올 계산서 나눠내기가 만만치 않은 골치아픈 다음 숙제다.

전영선 산업1팀 차장

[출처: 중앙일보] [노트북을 열며] 긴급재난지원금, 분노의 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