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좌파 운동권 인사들에겐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정의, 인권, 평등, 여성, 환경’ 같은 인류의 공동 가치를 자신들이 이념적 슬로건으로 만들어 선점했다고 우기는 것이다. 그들만 정의로운 것도 아니고, 그들만 인권을 주장하는 것도 절대 아닌데 마치 자신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우긴다. 자신들만 옳다고 여기는 것, 좌파의 독선(獨善)은 이렇게 굳어진다. 독선이 지속되면 자연스럽게 두 가지 행동양태가 나타나는데 하나는 ‘아집’이고, 하나는 ‘내로남불’이다. 정의와 평등의 산봉우리를 자신들만 점령했다고 믿는 그들은 본인 생각을 절대 바꾸지 않는 아집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똑같은 행동을 해도 내가 하면 로맨스요 네가 하면 불륜이라고 욕하는 ‘내로남불’이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그런가보다 했는데 최근 와서 좌파 집권 세력들은 거의 모든 사회적 갈등과 의혹을 ‘진영(陣營) 대결’로 몰아가려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해 5월 한 달은 윤미향이라는 사람이 위안부 성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으로 온 나라가 들끓었다. 그런데 엊그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이에 대해 "신상 털기 식 의혹 제기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18자에 불과한 이 문장에는 집권여당의 대표가 매우 문제적인 사태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게 드러난다.
먼저 이해찬 대표는 5월 한 달 윤미향과 정의연에 대한 의혹 제기에 대해 ‘신상 털기 식 의혹 제기’라는 매우 경멸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자, 이해찬 대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이 의혹을 제기하고 보도를 할 때는 디테일한 부분을 취재해서 인맥(人脈)과 돈 줄기를 밝혀내는 게 기본 중에 기본이다. 인적 네트워크를 알아야 사건의 밑그림이 드러나는 것이고, 부정한 돈, 불분명한 돈의 흐름을 좇아가야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에서 언론 취재의 기본 바탕은 이용수 할머니의 내부 고발, 그리고 국세청 회계 공시 자료가 출발점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해찬 대표는 무엇이 신상 털기라는 말인가. 국세청 공시 자료가 신상 털기라는 것인가, 윤미향씨 남편 김삼석씨가 수원 지역신문의 대표라는 게 신상 털기인가, 아니면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씨의 신상 털기를 했다는 것인가.
둘째, 이해찬 대표는 "굴복해선 안 된다"고 했다. 누구한테 굴복하지 말라는 말인가. 민주당 당선자 워크숍에서 당 대표가 한 말이니 자기 당 의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아니면 그날 워크숍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윤미향씨 들으라고 한 말일 수도 있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 대표가 ‘굴복’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점이다. ‘굴복’은 스스로 팩트와 진실을 밝히겠다는 태도가 전혀 아니다. ‘굴복’하지 말라는 것은, 이기고 지는 것, 즉 승패(勝敗), 다시 말해 진영 싸움, 내 편과 네 편이 맞붙었다는 것을 전제로 여기서 무릎을 꿇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이해찬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정의연의) 30년 활동이 정쟁 구실이 되거나 악의적 폄훼와 극우파의 악용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이해찬 대표에게 다시 묻는다. 지금 무엇이 ‘정쟁 구실’인가. 지금 ‘윤미향 사태’가 좌파 이데올로기와 보수 이념이 다투기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가. 이것이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여야 간에 18개 상임위원장 갈라먹기와 관련이 있는가. 개헌을 앞두고 헌법 전문을 어떻게 고치느냐와 관련이 있는가.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와 관련이 있는가. 도대체 무엇이 정쟁 구실인가. ‘윤미향 사태’는 아주 단순 명료하다. 정의연의 회계장부에서 사라진 국민 기부금과 정부 보조금 37억원이 어디로 갔는지 윤미향씨가 밝히라는 것이다. 정의기억연대는 올해도 20억원을 걷는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그중 40분의1인 5000만원만 할머니에게 쓸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 이유를 밝히라는 것이다. 10억원을 타내서 안성 쉼터를 마련했는데 할머니가 단 한 명도 살지 않은 이유를 밝히라는 것이다. 이 대표에게는 이것이 정쟁 구실로 보이는가.
이 대표는 의혹 제기에 대해 "악의적 폄훼"라고 했다. 이 대표에게 묻는다. 팩트에도 선의(善意)가 있고 악의(惡意)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정의기억연대가 국세청에 신고한 회계 공시 자료에서 돈 37억 원이 사라졌다.’ 이러한 팩트는 선의인가 악의인가. 대답해 보시라. 이 대표는 이어서 의혹 제기가 "극우파의 악용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분명히 말해 주기 바란다. 여기서 이 대표가 말한 ‘극우파’란 누구를 지칭하는가. 의혹 제기의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해서 발표하고 있는 야당 의원들을 극우파로 보고 있다는 뜻인가. 제기된 의혹을 보도하고 있는 전국 언론사들이 지금 극우파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뜻인가. 윤미향씨와 정의연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쪽을 극우파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윤미향씨네는 극좌파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중인가.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윤미향 당선자가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70%였다. 그렇다면 혹시 우리 국민의 70%가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극우파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뜻인가.
이낙연 전 총리가 윤미향 사태를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한 것이 지난 5월18일이다. 그런데 이제 불과 열흘도 안 돼서 이해찬 대표를 필두로 이번 사태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 전략이 급선회하고 있다. ‘굴복’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났듯이 민주당은 이번 윤미향 사태를 ‘좌우 진영 싸움’으로 몰아가려는 전략을 굳힌 것 같다. 맞불을 놓고 역공(逆攻)을 하는 것은 이번 사태 때문에 진보·좌파 진영 전체의 정당성이 흔들릴 수도 있다고 보는 절박함 때문일 것이다. 이럴 때 흔히 쓰는 전략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을 등에 업고, 좌우 진영 싸움으로 프레임을 바꿔 놓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 한두 번 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