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문희상 국회의장 초청으로 한남동 공관에서 열린 ‘6부 요인’들의 만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0대 국회를 마지막으로 길고 길었던 정치 인생을 마치게 된 문 의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김명수 대법원장, 유남수 헌법재판소장, 정세균 국무총리, 권순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의 부부를 불러 저녁을 대접한 것을 놓고 법조 원로들의 의견은 조금씩 달랐습니다.
“국민 눈높이 판결”에 오해 이어 삼권분립 침해 우려 지적 나와 군내 나는 수도승 생활이 교훈
“6부 요인 부부가 함께 만나는 일은 상당히 역사적인 일로, 전례가 있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는 문 대통령의 말처럼 새로운 회동 형식의 시작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코로나 정국에 모처럼 국정 책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는 장면은 정겹고 훈훈해 보였습니다. 친정부 성향의 매체들은 긍정적 반응과 함께 곧 열릴 21대 국회에 기대를 거는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6부 요인들의 저녁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분들도 꽤 있는게 현실입니다. 김 대법원장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권 중선위원장까지 묶어 어색하고 보기에 불편한 정치적인 저녁 자리였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권 위원장은 대법관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먼저 대법원장의 식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과거 대법원장들은 혼밥을 했습니다. 아침에 출근해 차도 혼자 마시고 점심도 항상 혼자서 사무실에서 먹었습니다. 6년의 임기동안 누군가와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은 특별한 일정에 해당됐습니다. 외부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후배 법관들에게 부담을 줄 것으로 우려한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대법원장 집무실엔 항상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각종 반찬이 뒤섞인 것 같은 콤콤한 냄새가 난다고 했겠습니까. 대법원장이 잠시 자리를 비우면 비서들은 서둘러 환기를 시켰습니다.
이러던 관행이 사라진 건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 부터입니다. 진보성향의 이 대법원장은 ‘저잣거리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혼밥을 거부했습니다. 출입 기자들을 청사 라운지로 불러 폭탄주를 마시며 시중의 여론을 듣고 자신의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재판 때 검찰의 수사 기록을 집어던지라”는 다소 과격한 발언이 나온 것도 이즈음입니다.
사법농단 혐의로 사법부 역사에 오점을 남기게 된 양승태 대법원장의 식사 관행은 좀 달랐습니다. 외부 행사가 간간히 있었지만 일정 지위 이상의 사람들과 주로 식사를 했습니다. 법원 내부에서도 엘리트 법관들을 주로 불렀던 것입니다. 여론의 청취라는 명목은 있었지만 일반 시민들과는 거리를 두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권력자들, 대통령이나 국회의장 또는 국무총리 등과는 공식적 행사에 따른 다과회 등을 제외하곤 식사자리를 가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탱하는 요소인 삼권분립을 의식한 것입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당시 담 건너 편에 있던 임채정 국회의장과 중·고교 동기동창이었지만 공식적인 모임은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보수 성향의 법조인들이 김명수 대법원장의 저녁 참석을 불편하게 보는 이유입니다. 이 정부 들어 사법농단이라는 죄명으로 전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차장, 전직 대법관들과 많은 판사들을 법정에 세운 것을 놓고 법리적·정치적 공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 아직까지는 여론의 지지가 약하지만 지난 총선 때 사전 투표 조작여부를 놓고 논란이 이는 상황에서 대법원장과 선거관리위원장의 만찬 환담이 좋게만 보이겠습니까.
공교롭게도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사건에 대한 여권의 재심 요구가 터져나온 것과 맞물려 김 대법원장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판결’을 주문했습니다. 물론 당시 저녁 자리와 대법원장의 발언을 연결짓는 것은 지나친 음모론이고 정치적 억지해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법원측도 만찬 참석을 둘러싼 논란이 부담스러운지 이런 사례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법원장께서 초청을 받아 참석했고,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이런 저녁은 처음”이라고 밝혔습니다. 과거에도 이런 만찬은 없었던 것을 대법원 측도 잘 알고 있습니다.
법원의 판결은 공평하고 정의로워야 합니다. 그럴려면 판결이 공평하고 정의롭게 보일 수 있도록 몸가짐을 해야합니다. 지금까지 많은 대법원장들이 ‘수도승 같은 고독’을 얘기하면서 군내나는 사무실을 지켰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직후 춘천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서초동 대법청사까지 왔던 김 대법원장의 초심을 믿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