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영준 논설위원
베이징 특파원 시절 중국 산시(山西)성의 깡시골 마을을 찾아간 적이 있다. 유명 위안부 활동가로부터 중국인 피해자 장셴투 할머니를 만나게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소개자 겸 통역으로 동행했다. 그는 이용수 할머니와의 만남을 주선하고 한·중 활동가끼리의 연대를 구축하고 싶어 했다.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없는 먼 길을 개인 경비를 들여 다녀온 것은 그의 일에 미력이나마 보태고 싶어서였다. 얼마 뒤 장 할머니가 숨지는 바람에 이용수 할머니와의 만남은 무산됐지만 중국인 활동가는 몇 차례 한국을 오갔고, 그때마다 나는 초청장 번역과 비자 수속을 대행해 줬다. 글머리에 이런 개인적 경험을 적는 건 위안부 운동의 ‘대의(大義)’를 부정하는 세력이 아님을 밝혀 오해를 막기 위해서다. 쓰지도, 반환도 못하는 일본 자금 나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의 절대 다수가 위안부 운동의 대의에 찬동할 것이다. 30여 년 전 공개 거론조차 꺼리던 위안부 이슈가 지금까지 온 것도 따지고 보면 국민적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 몇몇 이들은 그 대의를 독점하려 한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없었으면 위안부 문제가 교과서에 실리지도 못했다. 여러분들은 뭐 하고 있었는가. 책 한 권은 읽었을까”라고 했다. 회계를 챙기지 못한 터럭만큼의 불찰은 있을지언정 끼어들 자격조차 없는 사람들이 왈가왈부하는 건 참을 수 없다는 독선이다. 저금통을 갈라 성금을 낸 국민 지지로 위안부 운동이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안중에 없다. 무릇 사회운동에 종사하는 자가 갖춰야 할 품성으로선 한참 자격 미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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