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스시한조각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7] 韓·日 해석 다른 '傳家의 寶刀'

bindol 2020. 7. 31. 13:32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한국어와 일본어에는 똑같은 말인데 그 의미나 쓰임새가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전가의 보도'가 그런 예이다. 한국에서는 '~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다'라는 관용구로,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상투적으로 또는 집요하게 내세우는 자신의 장기나 상대의 약점'이라는 의미로 쓰일 때가 많다.

이를테면 "일본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불가역적 해결' 문구를 논파하려면 합의의 원점으로 돌아가 논리적 결함을 반박할 필요가 있다"는 식이다.

/이철원

 

반면 일본어에서 전가의 보도는 '위기에 처하여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뜻이다. 이를테면 "국회 해산권은 헌법상 총리에게 주어진 전가의 보도이다"라는 식으로 사용한다. 일본의 총리는 국회 해산권을 행사한 후 선거에 승리하지 못하면 정치 생명이 끝난다. 한국의 전가의 보도처럼 마구 휘두를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사실 전가의 보도는 일본 유래의 숙어이다. 과거 일본의 무가(武家)는 칼이 곧 생명이었다. 당시 야금(冶金)술로는 좋은 칼을 만드는 것이 어려웠고, 아무리 좋은 칼이라도 실전에서 사용하면 칼날이 손상되어 못 쓰게 된다. 따라서 최고의 명검은 집안에 모셔두고 가문의 권위의 상징으로 대물림하다가, 생(生)과 사(死)가 갈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필살의 무기로 사용하였다. 이것이 전가의 보도(傳家の寶刀)라는 말의 본래 뜻이다.

요즘 한·일 양국에서 전가의 보도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사안이 북핵 문제이다. 한국 정부는 북핵을 북한 정권이 늘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 정도로 바라보는 듯하고, 일본 정부는 북핵을 김정은 정권의 가공(可恐)할 전가의 보도로 바라보는 듯하다. 북핵은 어느 쪽 전가의 보도에 가까운 것인가? 위기상황 인식의 엄중함과 절박함을 스스로 점검해 봐도 좋지 않을까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01/20180201030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