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막부의 11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나리(德川家齊·1773~1841)는 40명의 측실과 53명의 자손을 두고 방탕한 생활로 국고를 탕진한 '속물 쇼군'으로 유명하다. 1841년 이에나리가 사망하자 12대 쇼군 이에요시(家慶)가 폐정 개혁에 나선다. 소위 '덴포(天保)의 개혁'이다. ![]()
문제는 이 조치가 현실을 도외시한 책상머리 정책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인플레이션은 근본적으로 수요 증가와 막부의 저질 화폐 개주(改鑄)가 맞물려 발생한 것이었다. 가부나카마는 독점, 경제력 집중 등의 폐해가 있었으나 당시 경제 구조하에서 신용 기반 유통망을 통해 상거래의 안정성과 양적 확대를 견인하는 순기능도 있었다.
|
'신상목의스시한조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28] 일본 영토가 된 태평양의 절해고도 (0) | 2020.07.31 |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27] 日 외교 각성시킨 露의 쓰시마 점령 (0) | 2020.07.31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25] 16세기 유럽 땅을 밟은 日 소년들 (0) | 2020.07.31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24] 오사카성 함락의 교훈 (0) | 2020.07.31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23] 明治시대 불어에서 탄생한 '白兵戰' (0) | 2020.0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