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타가와 겐신(宇田川玄眞·1770~ 1835)은 에도시대 후기 네덜란드로부터 전수된 난방(蘭方)의학을 집대성한 난학의 대가이다. 그는 서양 해부학서를 번역하면서 기존에는 없던 췌(膵·pancreas), 선(腺·gland) 등의 한자를 새로이 조자(造字)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겐신의 양자(養子) 요안(榕菴)은 부친 이상으로 난학에 능통했다. 요안이 1837년부터 10년에 걸쳐 저술한 '세이미카이소우(舍密開宗)'는 일본 최초로 서양 근대화학을 체계적으로 다룬 저작이다. '舍密(세이미)'는 네덜란드어로 화학을 의미하는 '셰미(chemie)'를 음차(音借)한 번역어이다. 기존 지식 체계에 존재하지 않던 신학문의 개념을 소개하는 것은 단순 번역을 넘어 창조 활동을 수반한다. 산소, 수소, 질소, 탄소 등의 원소명과 산화, 환원, 용해, 포화, 결정(結晶) 등의 기초 화학 용어는 이때 요안이 창안한 것이다.
'화학'이라는 용어가 일본에 등장한 것은 1861년 가와모토 고민(川本幸民)이 집필한 '화학신서(化學新書)' 출간 이후이다. 고민은 서구 근대화학을 일본에 이식(移植)하는 데 진력하여 일본 화학의 시조로 불리는 인물이다. 무기화학, 유기화학 2부로 구성된 화학신서에는 원자와 분자, 화합물 생성 원리, 화학반응식 등 당대 첨단 개념이 망라되어 있다. 일본의 화학 강국 위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일본 근대화의 원점으로 지목되는 메이지유신은 하나의 정치적 계기였을 뿐, 문명 개화의 기운은 그 이전부터 움트고 있었다. 기존의 관념과 지식 에 합리적 의심을 품고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실증적 진리를 추구하려는 지식인의 세계관 전환이 일본의 근대화를 견인한 으뜸 요인이다. 200년 축적의 저력을 입증이라도 하듯 올해에도 일본은 기초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조바심이 아니라 내실 있는 축적의 실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