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268] 황공대죄(惶恐待罪)

bindol 2020. 8. 2. 07:08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기(李塈·1522~1600)가 선조대 조정을 평가한 글을 읽었다.

"편안히 즐기는 것이 습관이 되어 기강과 법을 하찮게 여긴다. 뇌물이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상벌에 기준이 없다. 탐욕과 사치가 날로 성하고 가렴주구는 끝이 없다. 부역은 잦은 데다 힘이 들어 민심은 떠나가 흩어졌다. 어진 이와 사악한 이가 뒤섞여 등용되자 선비들은 두 마음을 품고, 관리들은 태만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할 마음을 먹지 않는다. 승정원은 임금 가까이에 있으면서 왕명을 출납함에 옳은 마음으로 보필할 생각은 않고 매번 '신의 죄를 벌해주소서'란 말만 일삼고, 비변사는 나라의 중요한 일을 관장하면서도 계획을 세울 적에 허물을 뒤집어쓰려는 사람은 없이 오로지 임금 뜻에 따르는 것만을 옳다고 여긴다. 도성 사람들은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황공하옵니다. 죄를 주소서를 되뇌는 승정원이요, 전하의 분부가 지당하십니다만 말하는 비변사로다(惶恐待罪承政院, 上敎允當備邊司)'." '간옹우묵(艮翁疣墨)'에 나온다.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에 해당하는 승정원은 일이 생기면 책임지고 나서서 일을 처리할 생각은 없이 그저 죽여주십사 하고 납작 엎드리기만 하고, 국가안보위원회 격인 비변사는 나라에 큰일이 생겨도 시의에 맞는 대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임금 입만 바라보면서 비위 맞추기에 바쁘다는 것이다.

율곡은 '석담일기(石潭日記)'에서 진강(進講) 때마다 학문과 정치에 대해 건의해도 선조가 아무 대답이 없자 이렇게 직언했다. "임금께서 마음을 터놓고 말을 주고받으신다 해도 아랫사람 마음이 통하지 못할까 걱정인데, 하물며 침묵 하시고 말씀을 하지 않으시어 아랫사람 기를 죽이시는 것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오늘날의 천재(天災)와 시대의 변고는 근고(近古)에 없던 것입니다. 신하와 백성들이 두려워하며 또 무슨 일이 있을까 걱정합니다. 전하를 위하는 계책은 마땅히 널리 좋은 방책을 구하여 서둘러 시대를 구제하시는 것이요, 가만히 계시어 아무 일도 하시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6/24/20140624042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