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제원건(尖齊圓健)은 붓이 갖춰야 할 네 가지 미덕이다. 첫째는 첨(尖)이다. 붓끝은 뾰족해야 한다. 끝이 가지런히 모아지지 않으면 버리는 붓이다. 둘째는 제(齊)다. 마른 붓끝을 눌러 잡았을 때 터럭이 가지런해야 한다. 터럭이 쪽 고르지 않으면 끝이 갈라져 획이 제멋대로 나간다. 붓을 맬 때 빗질을 부지런히 해서 터럭을 가지런히 펴야 한다. 한쪽으로 쏠리거나 뭉치면 쓸 수가 없다.
셋째가 원(圓)이다. 원윤(圓潤) 즉 먹물을 풍부하게 머금어 획에 윤기를 더해줄 수 있어야 한다. 한 획 긋고 먹물이 다해 갈필이 나오거나 먹물을 한꺼번에 쏟아내 번지게 하면 못쓴다. 또 어느 방향으로 운필을 해도 붓이 의도대로 움직여주어야 한다. 넷째는 건(健)이다. 붓의 생명은 탄력성에 있다. 붓은 가운데 허리 부분을 떠받치는 힘이 중요하다. 종이 위에 붓을 댔을 때 튀어 오르지 않고 퍼지면 글씨를 쓸 수가 없다. 탄성이 너무 강하면 획이 튀고, 너무 없으면 붓을 일으켜 세울 수가 없다.
이 네 가지 요소를 갖춘 붓을 만들려고 족제비 털 황모와 다람쥐 털 청모(靑毛), 노루 겨드랑이 털 장액(獐腋), 염소털 양모(羊毛), 그 밖에 뻣센 돼지 털과 서수필(鼠鬚筆) 등 다양한 짐승의 털을 동원했다. 빳빳한 토끼털로 기둥을 세우고, 청모나 황모로 안을 채우며, 족제비 털로 옷을 입힌 붓을 최상으로 쳤다. 털의 산지도 가렸고 채취 시기가 가을인지 봄인지도 따졌다.
붓만 그렇겠는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물러 터져 사람 좋다는 소리만 들어서는 큰일을 못 한다. 사람도 끝이 살아 있어야 마무리가 차지다. 행동에 일관성이 있고, 행보를 예측할 수 있어야지, 이리저리 튀면 뒷감당이 안 된다. 또 원만하고 품 이 넓어야 한다. 공연히 팩팩거리기만 하고 머금어 감싸 안는 도량이 없으면 아랫사람이 따르지 않는다. 뒷심이 있어 부하의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상관의 부당한 압력에는 튀어 오르는 결기도 필요하다. 눈치만 보다 제풀에 푹 퍼져서는 큰일을 맡을 수 없다.
붓만 좋다고 글씨가 덩달아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도구를 잘 갖추고 바른 자세로 피나는 연습을 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