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때 안진경(顔眞卿)의 '쟁좌위첩(爭座位帖)'은 정양왕(定襄王) 곽영의(郭英義)에게 보낸 글의 초고다. 행서의 절품(絶品)으로 꼽는다. 조정의 연회에서 백관들이 자리 문제로 다투는 일을 간쟁했다. 곽영의는 환관 어조은(魚朝恩)에게 아첨하려고 그의 자리를 상서(尙書)의 앞에 배치하려 했다. 안진경은 붓을 들어 곽영의의 이런 행동을 준절히 나무라며 '청주확금(淸晝攫金)' 즉 벌건 대낮에 황금을 낚아채는 처신이라고 격렬히 비난했다.
그중의 한 대목이다. "가득 차도 넘치지 않는 것이 부(富)를 길이 지키는 까닭이요, 높지만 위태롭지 않음이 귀함을 길이 지키는 까닭입니다. 어찌 경계하여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서경'에는 '네가 뽐내지 않으면 천하가 너와 더불어 공을 다투지 않고, 네가 남을 치지 않으면 천하가 너와 더불어 능함을 다투지 않는다'고 하였지요. 이 때문에 100리 길을 가는 사람은 90리를 절반으로 여긴다고 했던 것이니, 만년과 마무리의 어려움을 말한 것입니다(滿而不溢, 所以長守富也, 高而不危, 所以長守貴也. 可不儆懼乎! 書曰:爾唯不矜, 天下莫與汝爭功, 爾唯不伐, 天下莫與汝爭能. 故曰:行百里者半九十里, 言晩節末路之難也)."
100리 길을 가는 사람은 90리를 절반으로 친다(行百里者, 半於九十). 이 말은 원래 '전국책(戰國策)'의 '진책(秦策)'에 나온다. 진무왕(秦武王)이 이웃 나라와의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며 교만한 기색을 보이자 이를 경계하여 한 말이다.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해 '시작이 반'라고들 하나, 100리의 절반은 50리가 아닌 90리 지점으로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금세 뜻대로 잘될 것 같아도, 세상 일이 그리 만만치가 않다. 근거 없는 낙관과 자만에 취해 있다 보면 작은 일에서 삐끗하고 예상치 않은 데에 발목이 붙들려 결국 큰일을 그르치고 만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마무리해야만 일을 잘 마칠 수가 있다. 그러자면 90리를 오고서도 이제 겨우 절반쯤 왔다는 각오로 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경'의 '탕지습(湯之什)'에서 "모두 처음은 있었지만 능히 끝이 있기는 드물었다(靡不有初 鮮克有終)"고 말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제 됐다 싶을 때 더욱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