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西周) 시절 이야기다. 초왕(楚王)과 범군(凡君)이 마주 앉았다. 초왕의 신하들이 자꾸 말했다. "범은 망했습니다." 망한 나라 임금하고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세 번을 거듭 얘기하자 범군이 말했다. '범나라는 망했어도 내가 있지 않소. 범나라가 망해도 나의 실존을 어쩌지 못한다면 초나라가 존재함도 그 존재를 장담치 못할 것이오. 이렇게 보면 범은 망한 적이 없고, 초도 있은 적이 없었소.' '장자'의 '전자방(田子方)'에 나온다.
고려 때 이인로(李仁老)는 '화귀거래사(和歸去來辭)'에서 노래한다. '손을 마주 잡고서 맹세를 하자마자 머리도 돌리기 전 모두 틀어지누나. 장(藏)과 곡(穀)은 다 잃었고, 형과 범은 다 망했지. 정신으로 말을 삼고, 박을 갈라 술잔 하리(纔握手而相誓, 未轉頭而皆非… 臧穀俱亡, 荊凡孰存. 以神爲馬, 破瓠爲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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