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들이 어울려 놀며 질문에 대답을 못 하면 벌주를 마시기로 했다. 한 사람이 물었다. "지난해 오늘(去年此日)은 어떤 물건인가?" "지난해는 기유(己酉)년이고 오늘은 21일이니, 식초[醋]일세." 그는 벌주를 면했다. 이십(卄) 일(一) 일(日)을 합치면 석(昔)이고, 닭띠 해는 유(酉)라 합쳐서 초(醋)가 되었다. 청나라 유수(鈕琇)의 '고잉(觚賸)'에 나온다. 일종의 파자(破字) 놀이다.
글을 읽다가 문득 지난해 오늘 나는 뭘 하고 있었나가 궁금해졌다. 일기를 들춰보니 여전히 논문을 들고 씨름 중이다. 이학규(李學逵)가 3월 말일에 쓴 '춘진일언회(春盡日言懷)' 시는 이렇다.
"지난해 이날엔 봄이 외려 끝났더니, 올해의 오늘은 사람 아직 안 왔다네. 어이해야 이 마음을 얼마쯤 남겼다가, 내년의 이날에 날리는 꽃 구경할까(去年此日春還盡, 此日今年人未歸. 那得心腸賸幾許, 明年此日看花飛)?" 작년엔 봄이 그저 가버린 것이 아쉬웠는데, 올해는 풍경 속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래서 아쉬운 이 마음을 조금 남겨 두었다가, 내년 봄에는 지는 꽃잎이라도 보겠다는 얘기다.
다음은 정희득(鄭希得)이 통신사행을 따라 일본에 갔다가 지은 '청명일전파유감(淸明日奠罷有感)' 시다. "지난해 오늘은 고향 산서 봄 맞더니, 올해의 오늘에는 아파강(阿波江) 물가일세. 이 몸은 참으로 물결 위 부평초라, 내년의 오늘에는 어느 곳에 있을런가(去年此日故山春, 今年此日阿江渚. 此身正似波上萍, 明年此日知何處)."
서거정(徐居正)이 쓴 '추도소녀(追悼小女)'는 또 이렇다. "지난해 오늘에 너는 아직 있었는데, 올해엔 아득히 어디로 가버렸나. 어이 다시 옷깃 당겨 대추 달라 하겠느냐? 네 모습 생각나서 눈물 막지 못하겠네(去年此日汝猶在, 今歲 茫茫何所之. 那復牽衣求棗栗, 不堪流涕憶容姿)." 그사이에 어린 딸이 세상을 뜬 것이다.
금년에는 작년이 그립고, 내년이면 금년이 그리울 것이다. 아련한 풍경은 언제나 지난해 오늘 속에만 있다. 눈앞의 오늘을 아름답게 살아야 지난해 오늘을 그립게 호명할 수 있다. 세월의 풍경 속에 자꾸 지난해 오늘만 돌아보다, 정작 금년의 오늘을 놓치게 될까 봐 마음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