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로(李恒老·1792~1868)가 말했다. "공부함에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은 오래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오래 견딜 수 없다면 아주 작은 일조차 해낼 수가 없다(爲學最怕不能耐久, 不能耐久, 小事做不得)." 김규오(金奎五·1729~ 1791)는 또 '외암홍공행장(畏菴洪公行狀)'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의 근심은 흔히 괴로움을 능히 견뎌내지 못하는 데 있다. 한번 근심이 있게 되면 문득 여기에 얽매여 동요하고 만다. 그러니 그 사생과 화복에 있어 어떻게 처리할 수 있겠는가(吾輩之患, 多在於不能耐苦. 一有憂穴, 便被膠擾, 其於死生禍福, 如何處得)?"
김윤식(金允植·1835~1922)의 '감람(橄欖)' 시는 이렇다. "푸릇푸릇 소금에 절인 흔적 약간 띠어, 가만히 씹어 보자 맛있는 줄 알겠구나. 충언도 급히 하면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풀어 말하면 뉘 능히 번거로움 견뎌낼까(靑靑微帶漬鹽痕, 細嚼方知意味存. 忠言驟進宜難入, 紬繹誰能耐久煩)?" 소금에 절인 올리브 열매를 오래 씹자 그제야 맛없는 맛이 느껴진다. 세상일이 이와 같아 오랜 시간 번거로운 과정을 견뎌내야만 비로소 참맛을 알 수 있다.
강석규(姜錫圭·1628~1695)가 쓴 '차류만춘기시운(次柳萬春寄示韻)'의 첫 네 구는 이렇다. "늙도록 공부 힘써 무릎 닿아 책상 뚫고, 몇 번의 더위, 추위 지났는지 모르겠네. 이무기가 설령 뇌우(雷雨) 만나지 못한대도, 송백(松柏)은 눈서리를 외려 능히 견딘다네(到老劬書膝穿床, 不知曾閱幾炎凉. 蛟龍縱未逢雷雨, 松柏猶能耐雪霜)." 평생 쓴 책상이 무릎에 닳아 구멍이 난 사이에 몇 번의 여름과 겨울이 지나갔던가. 이무기는 우레를 만나야 용이 되어 승천하지만, 설령 못 만난들 책과 함께한 일생이 부끄럽지는 않다. 송백이 송백인 것은 그 호된 눈보라와 무서리를 견뎌냈기 때문이다.
이수인(李 樹仁)은 '황자이국음(黃紫二菊吟)'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자주색 국화가 황국(黃菊) 곁에 돋더니만, 황색 국화 더디 피고 자주 국화 먼저 핀다. 이제껏 바른 길은 더딘 성취 많았거니, 더뎌야만 바야흐로 오래 견딜 수가 있네(紫菊生於黃菊邊, 黃菊猶遲紫菊先. 由來正道多遲就, 遲就方能耐久全)." 한세상 살다 가는 일이 온통 참고 견디며 쌓아가는 과정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