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503] 약교지도 (約交之道)

bindol 2020. 8. 5. 05:49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유비의 처소에 손님이 왔다. 거침없는 담론이 시원시원해서 유비가 넋을 놓고 들었다. 제갈량이 불쑥 들어서자, 손님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일어섰다. 유비가 제갈량에게 객에 대한 칭찬을 잔뜩 늘어놓았다. 제갈량이 대답했다. "제가 손님을 잠깐 살펴보니, 낯빛이 흔들리고 마음에 두려워하는 기색이 있습니다. 시선을 내리깔고 곁눈질도 자주 하더군요. 삿된 마음을 안으로 감추고는 있지만 간사한 형상이 이미 밖으로 새어 나옵니다. 틀림없이 조조가 보낸 자객일 것입니다." 정신이 번쩍 든 유비가 급히 사람을 보내 그를 잡아오게 했다. 그는 벌써 담장을 뛰어넘어 달아난 뒤였다. '언행휘찬(言行彙纂)'에 나온다.

명나라 왕달(王達)은 '필주(筆疇)'에서 약교지도(約交之道), 즉 교유를 맺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그 방법은 첫째 그 말을 살피고[察其言], 둘째 그 낯빛을 관찰하며[觀其色], 셋째 그 마음을 헤아려 본다[究其心]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말이 몹시 달콤할 경우 덜컥 믿으면 안 된다. 그 낯빛이 지나치게 온화해도 그것만으로는 믿기가 어렵다. 그 마음을 살펴서 그 낯빛과 같고 언어와 합치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일치하면 그 사람은 정직하고 충후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과는 교유해도 후회할 일이 없다.

그 반대는 어떠한가? "말을 할 듯하다가 말하지 않고, 갈고리나 차꼬 같은 노림수를 감춘다. 웃으려다가 웃지 않고 꾹 참아 멈추는 뜻을 머금는다.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간사한 사람이다. 이를 통해 그 마음을 알 수 있으니 나와 사귀고자 한들 되겠는가? 멀리하는 것이 옳고 거리를 두는 것이 옳다. 마음으로 사귀어서는 안 된다(其有欲言不言, 而藏鉤鉗之機. 欲笑不笑, 而含押闔之意. 此必奸人也. 由是而知其心矣. 欲與我交其可哉. 遠之可也, 敬之可也. 交乎心則不可也)."

말할 듯 머금거나 웃으려다 정색을 하는 것은 속셈을 감추려는 행동이다. 꿍꿍이가 있으면 말과 행동이 부자연스럽다. 상대의 눈을 바로 보지 못하고 흔들린다. 몸짓과 표정을 과장한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은 위험하다. 온화한 표정과 사람 좋은 웃음도 그 마음에 비추어 잘 살펴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23/20190123039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