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517] 흉종극말 (凶終隙末)

bindol 2020. 8. 5. 06:09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초한(楚漢)이 경쟁할 당시 장이(張耳)와 진여(陳餘)는 대량(大梁)의 명사(名士)로 명망이 높았다. 처음에 두 사람은 부자(父子)처럼 다정하게 지냈다. 여러 역경을 함께 겪으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나중에 권력을 다투게 되자 경쟁 관계로 돌아섰다. 끝내는 장이가 지수(泜水)가에서 진여의 목을 베기에 이르렀다. 흉종(凶終), 그 시작은 참 좋았는데 마지막은 흉하게 끝이 났다.

전한(前漢) 시절 소육(蕭育)과 주박(朱博)은 절친한 벗이었다. 처음에 주박은 두릉정장(杜陵亭長)이란 낮은 벼슬에 있었다. 소육이 그를 적극 추천해서 차츰 승진해 구경(九卿) 지위에 올랐다. 정작 장군과 상경(上卿)을 거쳐 승상 자리까지 오른 것은 주박이 먼저였다. 이후 두 사람은 사소한 틈이 벌어지면서 오해가 오해를 낳아 극말(隙末), 즉 끝내 완전히 갈라서서 원수가 되고 말았다.

흉종극말(凶終隙末)은 세상에서 벗 사이에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는 일을 비유하는 말이다. 한때는 의기가 투합해서 죽고 못 사는 사이였는데, 나중엔 싸늘히 돌아서서 서로를 헐뜯다 못해 죽이기까지 했다. 왜 그랬을까? 견리망의(見利忘義),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의리를 잊었기 때문이다.

구양수(歐陽脩)가 장지기(蔣之奇)를 어사로 천거했다. 장지기는 구양수를 몰래 무고해서 박주지사로 쫓아냈다. 구양수는 이때 올린 표문에다 이렇게 썼다. "예형(禰衡)을 천거한 먹물이 마르기도 전에, 예(羿)를 쏜 화살을 이미 당겼네(未乾薦禰之墨, 已關射羿之弓)." 한나라 때 공융(孔融)이 40세에 20여 세의 예형을 아껴 글을 올려 천거했다. 방몽(逢蒙)은 예(羿)에게서 활 쏘는 법을 배웠다. 다 배운 뒤 천하에 자기보다 나은 이가 예밖에 없다고 여겨 스승을 쏘아 죽였다. 구양수는 자신이 장지기를 진심으로 아껴 천거했는데, 막상 돌아온 것은 차디찬 배신과 저격이었다는 말을 이렇게 썼다.

한때 동지를 외치며 어깨를 겯던 이들이 한순간에 사생결단하고 싸운다. 그 곁에서 어제의 원수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서로 손을 잡는다. 저마다 정의를 내세우지만 실은 서로의 셈법이 있었을 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30/20190430036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