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555] 대오구금 (臺烏久噤)

bindol 2020. 8. 6. 05:14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다산이 '양성이 바른말로 간하지 않아 한유가 나무란 것을 당나라 신하들이 축하하다(唐羣臣賀韓愈書責陽城以不諫)'란 글에서 썼다. "옳은 길로 권면함이 도리이건만, 장마(仗馬)가 울지 않음 개탄스럽네. 어이 일이 없는데 말을 하겠나? 대오(臺烏)가 오래 입 다묾을 탄식하노라(責以善是道也, 慨仗馬之不鳴. 豈無事可言耶? 歎臺烏之久噤)."

장마불명(仗馬不鳴)과 대오구금(臺烏久噤)은 고사가 있다. 당나라 때 보궐(補闕) 두진(杜璡)이 간신 이임보(李林甫)의 국정 농단을 간언했다가 지방관으로 좌천되었다. 떠나기 전 동료들에게 말했다. "자네들, 입장마(立仗馬)를 보지 못했나? 종일 울지 않으면 꼴과 콩을 실컷 먹고, 한 번이라도 울면 쫓겨난다네. 쫓겨난 뒤에는 비록 울지 않으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입장마는 의장대(儀仗隊)에 서 있는 말이다. 가만있지 않고, 몸을 움직이거나 힝힝대면 바로 쫓겨난다. 두진의 말뜻은 이렇다. "꼴 맛에 길들어 우는 것을 잊었군. 간관(諫官)이 바른말을 잊으면 의장대의 저 말과 다를 게 뭔가? 나는 가네. 자네들 꼴 잘 먹고 살이나 찌시게들." 이것이 장마불명, 즉 울지 않는 의장마 이야기다.

한나라 때 어사부(御史府) 앞에 잣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수천 마리의 까마귀가 아침저녁으로 모여 앉아 시끄럽게 짖어댔다. 이후 사간원을 오대(烏臺)라 불렀다. 증공량(曾公亮)이 늙어 정무를 감당하지 못하면서도 벼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대간 중 누구도 이를 지적하지 않자 이복규(李復圭)가 시를 지어 조롱했다. "연못가 늙은 봉황 웅크린 채 안 떠나도, 대 위 주린 까마귀는 입 다물고 말 안 하네(老鳳池邊蹲不去, 飢烏臺上噤無聲)." 이것이 또 대오구금의 고사다. 간관이 직무를 유기 한 채 입을 꽉 다문 것을 말한다. 입을 다물면 맛있는 꼴이 생기고, 바른말을 하면 즉시 쫓겨나기 때문이다.

김종직(金宗直)이 '술회(述懷)' 시에서 말했다. "양심은 엄정하고 여론은 공정하니, 대오(臺烏)가 입 다물고 말이 없다 하지 마소(天君有嚴輿論公, 莫謂臺烏噤無語)." 의장대의 말과 어사부의 까마귀가 입을 꽉 닫아도 세상에는 양심과 공론이 있단 말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22/20200122037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