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557] 육요사병 (六要四病)

bindol 2020. 8. 6. 05:17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소치(小癡) 허련(許鍊·1809~1892)이 남긴 산호벽수(珊瑚碧樹)는 그가 평생 추종했던 추사의 글씨를 옮겨 적어둔 적바림이다. 이 중 한 단락. "그림 그리는 법에는 여섯 가지 요점이 있다. 신(神)과 청(淸), 경(勁)과 노(老), 활(活)과 윤(潤)이 그것이다. 네 가지 병통이 있다. 강필(僵筆)과 고필(枯筆), 흐린 거울이나 흙탕물 같은 탁필(濁筆), 골력이 없는 약필(弱筆)이 그것이다(畵有六要, 神淸勁老活潤. 有四病, 僵筆枯筆濁如昏鏡渾水, 弱筆無骨力)." 이른바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명심해야 할 육요사병(六要四病), 즉 여섯 가지 핵심과 네 가지 병통에 대한 지적이다.

먼저 육요. 첫째는 신(神)이다. 손끝의 재주가 아닌 정신의 깊이를 담아야 한다. 둘째는 청(淸)이다. 맑은 기운이 감돌아야 좋은 그림이다. 셋째는 경(勁)이니 붓끝에 굳센 기상이 드러나야 한다. 넷째는 노(老)다. 의욕도 좋지만 오랜 연습에서 오는 노련미를 갖춰라. 다섯째가 활(活)이다. 살아 생동하는 느낌을 잘 살려내야 한다. 여섯째는 윤(潤)이다. 대상과 나 사이에 촉촉한 윤기가 느껴져야 한다.

이 육요를 망치는 것은 사병이다. 첫째, 강필(僵筆)은 강시(僵尸), 즉 미라처럼 딱딱하고 뻣뻣한 붓질을 말한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원숙과는 거리가 멀다. 경(勁)과 활(活)에 문제가 생긴다. 둘째는 고필(枯筆)이다. 먹을 제대로 쓰지 못해 무미건조하고 삭막하다. 윤(潤)이 안 될 때 나타난다. 셋째는 탁필(濁筆)이다. 청(淸)의 기운을 잃어서 생긴다. 넷째는 약필(弱筆)이다. 신(神)이 사라지고 노(老)도 놓쳤다.

송나라 유도순(劉道醇)도 화법육요(畫法六要)를 제안했다. 첫째가 기운겸력(氣韻兼力), 운치와 필력의 조화다. 둘째는 격제구로(格制俱老 ), 격식과 제도가 노련해야 한다. 셋째는 변이합리(變異合理)다. 변화하되 그 변화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 넷째는 채회유택(彩繪有澤), 채색이 윤택해야 한다. 다섯째가 거래자연(去來自然)이니 붓질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여섯째는 사학사단(師學舍短)으로 배운 것을 본받되 단점을 버리라는 주문이다. 그림 그리는 일만 그렇겠는가? 글 쓰고 공부하는 일이 다 같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06/20200206000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