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이 박제가를 위해 써준 '초정집서(楚亭集序)'에서 말했다. "천지가 비록 오래되었어도 끊임없이 생명을 내고, 해와 달이 해묵어도 광휘는 날마다 새롭다. 책에 실린 것이 아무리 넓어도 가리키는 뜻은 저마다 다르다. 그래서 날고 잠기고 달리고 뛰는 것 중에는 혹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 있고, 산천초목에는 반드시 비밀스럽고 영험한 것이 있게 마련이다. 썩은 흙이 영지를 길러내고, 썩은 풀은 반딧불이로 변한다(天地雖久, 不斷生生, 日月雖久, 光輝日新. 載籍雖博, 旨意各殊. 故飛潛走躍, 或未著名. 山川草木, 必有秘靈. 朽壤蒸芝, 腐草化螢.)"
썩은 풀이 반딧불이로 변한다는 부초화형(腐草化螢)은 '예기(禮記)' 월령(月令) 편에 나온다. "계하(季夏)의 달에는 썩은 풀이 반딧불이로 변한다(季夏之月, 腐草化螢)"고 했다. 반딧불이는 물가의 풀뿌리에 알을 낳는다. 이듬해 부화해 성충이 되므로 사람들은 썩은 풀이 화생(化生)하여 반딧불이가 된 것으로 여겼다.
썩은 흙에서 영지버섯이 나온다. 썩은 풀은 반딧불이를 품고 있다. 해묵은 것에서 새로운 것이 나온다. 낡아 의미 없다고 여겨 폐기했던 것 속에 미처 생각지 못한 가치가 숨어 있다.
연암은 '답이중존(答李仲存)'에서 말한다. "속담에 '꿈에 중을 보면 옴이 생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중은 절에 살고, 절은 산에 있고, 산에는 옻나무가 있는데, 옻나무는 사람에게 옴이 생기게 하지요. 그래서 꿈에 서로 인하게 되는 것입니다(鄙言有之, 夢僧成癩. 何謂也? 僧居寺, 寺在山, 山有漆, 漆能癩人. 所以相因於夢也.)" 꿈속에 본 스님과 피부에 돋은 옴 사이에는 절과 산과 옻나무의 세 단계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과 저것은 전혀 관계가 없지만, 중간에 드러나지 않은 몇 단계를 복원 하면 인과관계가 확인된다는 뜻이다.
코로나19가 세상의 소통 방식과 가치 기준을 급속도로 해체하고 있다. 익숙했던 일상과 관계가 낯설게 변했다. 작은 변화에 무심하다가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튀는 공에 허둥대기 일쑤다. 답은 파천황(破天荒)의 새것 속에 있지 않다. 낡고 진부한 것 속에 이미 들어 있다. 통찰과 예지의 힘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