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한(洪儒漢·1726~1785)은 성호 이익의 제자다. 그는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수덕자(修德者)라고 한다. 스승 성호를 통해 서학서를 처음 접한 뒤 혼자 공부해 신앙의 길을 걸었다. 권철신, 홍낙민, 이존창 등 초기 교회의 핵심적 위치에 있던 인물이 모두 그의 영향을 받았다.
8대 종손 홍기홍 선생 댁에 보관된 '가장제현유고(家藏諸賢遺藁)'와 '가장간첩(家藏簡牒)'에는 성호가 홍유한에게 보낸 편지가 57통이나 남아 있다. '성호집'에는 이 중 단 한 통만 수록되었다.
성호가 홍유한을 떠나보내며 써준 시는 이렇다. 제목이 '홍사량과 작별하며(別洪士良)'이다. "물나라 새로 갠 날씨를 만나, 산 햇빛 사립문에 비쳐들었지. 이별 근심 생각만 어지러운데, 그대는 돌아간다 말을 하누나. 늙은이 다른 생각 하지 못하고, 아쉬워 가는 옷깃 붙잡는다오(水國逢新晴, 山日光入扉. 離愁忽攪思, 遊子且言歸. 衰遲鮮餘念, 睠焉摻征衣)." 첫 여섯 구다. "자네가 내게 올 때는 햇빛이 사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네. 이제 떠난다 하니 서운해 옷깃을 자꾸 붙잡게 되는군." 늙은 스승의 애틋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어 홍유한에 대한 덕담을 건넸다. "꼿꼿한 그대 나이 한창이거니, 난초가 향기를 토해내는 듯. 기르고 북돋워 힘을 쏟아야, 옥 같은 모습을 이루게 되리. 이제껏 마주해 토론하면서, 서로가 이를 통해 더 나아갔지. 세상일 잠시도 그침 없으니, 공 들여도 가는 세월 어이하리오. 그대여 간두(竿頭)에서 걸음 내디뎌, 눈 비비고 밝은 빛 보게 해주게(亭亭子秊盛, 若蘭方吐菲. 栽培苟輸力, 玉汝將庶幾. 向來接緖話, 麗澤賴發揮. 世故姑未休, 功費柰馳暉. 勉子竿上步, 拭目看明輝)."
젊은 제자를 막 피어난 난초꽃의 짙은 향기에 견주었다. "쉬지 않고 노력해 주옥같은 인물이 되어주게나. 세상일에 휘둘려 공부의 마음을 흩트려서는 안 되네.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을 내디뎌야 대장부일세. 괄목상대로 눈부시게 발전한 모습 볼 날을 기다리겠네." 대학자의 제자 사랑과 언어의 기품이 넘치지 않게 담겼다. 제자가 먹고사는 일에 마음이 팔려 큰 공부를 그르치게 될까 염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