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580] 고류선성 (高柳蟬聲)

bindol 2020. 8. 6. 05:5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뉘엿한 저녁 연구실을 나서다가 올해 첫 매미 소리를 들었다. 잘못 들었나 싶어 차 시동을 끄고 창문을 내렸다. 내다보니 하늘이 문득 높고, 매미 소리는 이제 막 목청을 틔우느라 나직하다. 테니스장을 지날 때 다시 한번 창을 내렸지만 거기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색(李穡·1328~1396)은 '매미 소리(蟬聲)'에서 "매미 소리 귀에 들자 내 마음이 움직인다(蟬聲入耳動吾情)"고 썼다. 윤기(尹愭·1741~1826)는 '매미 소리를 듣다가(聽蟬)'에서 "빈 산에 해묵은 나무가 많아, 여기저기 매미 울음 그윽도 하다. 그대여 시끄럽다 싫어 말게나, 시끄러운 가운데 고요함 있네(空山老樹多, 處處蟬聲邃. 請君莫嫌喧, 喧中有靜意)"라고 썼다. 과연 매미 소리는 주변을 고요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김윤식(金允植·1835~1922)의 '신거(新居)' 시에도, "키 큰 버들 매미 소리 여름에도 서늘한데, 석양 무렵 난간에서 바람 이슬 노래하네. 성 가득 자옥한 검은 먼지 가운데, 이곳만 초연하게 깨끗한 땅 차지했네(高柳蟬聲夏亦寒, 談風吟露夕陽欄. 滿城滾滾緇塵裏, 地位超然占淨乾)." 서울로 이사한 벗의 새집을 축복한 글이다. "그대가 서울로 이사를 오니, 자네 집 버들엔 매미가 울어 시원하군. 티끌뿐인 서울에 특별한 청정 구역이 만들어진 느낌일세."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창강(滄江) 조속(趙涑·1595~1668)을 위해 쓴 만시는 이렇다. "여러 날 매미 소리 맑더란 얘기, 글에 써서 어른께 보내드렸지. 그 어른 이제는 계시잖으니, 이 마음 마침내 뉘게 말할까(數日蟬聲語, 書之寄丈人. 丈人今不在, 此意竟誰陳)?"


앞의 두 구절은 전거가 있다. 주자가 여백공(呂伯恭)에게 편지를 보냈다. "며칠 사이 매미 소리가 더욱 맑습니다. 들을 때마다 높은 풍도를 그리워하지 않음이 없습니다(數日來, 蟬聲益淸. 每聽之, 未嘗不懷高風也)." 이 17자가 편지의 전문이다. 매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대의 맑은 모습이 떠오른다. 송시열은 앞선 편지에서 조속에게 이 편지의 사연으로 그리운 마음을 전했는데, 이제는 그런 편지 쓸 곳마저 없어져서 서운하다는 얘기다. 나무마다 가득한 매미의 합창을 기다린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16/202007160004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