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週 漢字

[漢字, 세상을 말하다] 滑稽<골계>

bindol 2020. 8. 15. 06:01

글재주가 뛰어났던 사마천(司馬遷)은 말 재주꾼 역시 좋아했다. 『사기(史記)』에 천하의 언변가를 모아 ‘골계열전(滑稽列傳)’을 지었다. 초(楚) 장왕(莊王)이 지나치게 말(馬)을 아끼자 풍자(諷刺)로 악습을 고친 우맹(優孟), 주색에 빠진 제(齊) 위왕(威王)의 버릇을 바로잡은 순우곤(淳于髡) 등이 나온다. 사마천은 진(秦)의 꾀주머니(智囊·지낭)로 불린 저리자(樗里子)를 “말이 유창하고 지혜가 많았다(滑稽多智·골계다지)”고 표현했다.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는 “유가는 말재주가 좋아 법으로 규제하기 어렵다(夫儒者滑稽而不可軌法)”고 했다. 그의 ‘골계’ 사랑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원래 골계는 술 마시는 도구(酒器)의 이름이었다. 이 물건은 신기하게도 온종일 술을 따라도 술이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빗대 내뱉는 말이 멈출 줄 모르는 경지의 말재주를 골계라 했다.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에 ‘과격하지만 애교 있게’를 편집 방침으로 내세운 ‘곳케이신분(滑稽新聞)’이 오사카에서 창간됐다. 미야타케 가이코쓰(宮武外骨)는 “위세와 무력에 굴하지 않고 부귀에 현혹되지 않는다”며 독기를 세운 풍자로 정부와 재벌을 비웃었다. 염문이 많았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명치호색일대남(明治好色一代男)”이란 표제 아래 입안 가득 기녀(妓女)로 채운 얼굴의 만평으로 가차없이 풍자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사살하자 ‘정상적이지 않은 죽음은 행복’이란 제목의 글을 실었다. 1895년 청일전쟁 강화를 위해 일본에 온 이홍장(李鴻章)을 저격했으나 미수에 그쳤던 고야마 로쿠노스케(小山六之助)를 거론하며 안 의사를 옹호했다.

프랑스의 골계신문 격인 ‘샤를리 에브도’가 참혹한 테러를 당했다. 세계 인구의 23%인 18억 무슬림의 신앙을 무시하고 예언자 마호메트를 풍자한 만평을 그렸다는 게 테러 이유다. 무슬림은 캘리그래피 이외에 유일신 알라와 마호메트를 형상화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속하고 과격한 언론 역시 보호해야 할 언론이다. 익살 속에 교훈이 담긴 골계는 폭력보다 생명이 길기 때문이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