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부터 중앙일보에 연재되는 우리 현대사의 산증인 김종필 회고록이 세간의 화제다. 그 동안 잘못 알려져 있었거나 또는 새로 밝혀지는 내용이 하나 둘이 아니라 독자의 관심이 지대하다. 매번 이 글을 볼 때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연재 제목인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笑而不答)’에 눈길이 가곤 한다. 소이부답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그저 웃고 답하지 않다’는 말이다. 증언록은 말을 해야 하는 것인데 그 뒤를 따르는 말이 그저 웃고 말하지 않는다는 소이부답이라니 지독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여기서의 ‘소이부답’이란 지나간 시절을 회고하는 김종필의 마음이 그러하다는 뜻일 게다.
소이부답은 당(唐)대의 시선(詩仙) 이백(李白)이 지은 산중문답(山中問答)이라는 시에 나온다. ‘무슨 까닭으로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는다면(問余何事棲碧山) 그저 말없이 웃으며 대답하지 않지만 마음은 한가롭기 이를 데 없네(笑而不答心自閑) 복숭아 꽃은 흐르는 물에 떨어져 아득히 흘러가니(挑花流水杳然去) 다른 세상이로되 인간 사는 곳이 아니구나(別有天地非人間).’
왜 이런 산 속에 사느냐고 묻는데 시인은 답을 하지 않고 그저 빙그레 웃는 모습이다. 이백은 왜 답을 하지 않는 걸까. 말을 하다 보면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말이란 게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 진정한 뜻은 곧잘 왜곡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또는 한두 마디로 자신의 깊은 뜻을 쉽게 설명할 수 없어서일 수도 있겠다. 구구절절 속마음을 다 풀어 드러내기가 어렵기도 한 까닭이다. 그러나 마음은 한가롭기 그지없다(心自閑)는 것이다.
이런 경지가 바로 마음은 평화롭고 기운은 조화로운 심평기화(心平氣和)의 상태가 아닐까. 욕심을 버리니 화를 낼 이유도 조급할 필요도 없다. 한 발자욱 떨어져 생각하면 그렇게 속을 태울 필요가 없던 일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늘 시끄럽다. 세속의 욕심과 욕심이 맞부딪치다 보니 편안할 날이 없다. 특히 우리 사회는 ‘출세(出世)’라는 욕망의 그물에 걸려 허우적 거리는 이가 많다. 그러다 보니 남을 죽게도 하고 또 그 결과로 자신의 몰락이 초래되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심평기화’ 네 글자를 권하고 싶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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