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 코끼리 만지기’란 우화가 있다. 고대 인도의 한 임금이 대신(大臣)에게 코끼리 한 마리를 장님들에게 보이도록 명령했다. 제각기 코끼리를 손으로 만져본 장님들이 서로 코끼리를 설명했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기가 아는 부분만이 맞다며 고집하는 맹인모상(盲人摸象)의 고사다. 출전은 불교의 ‘대반열반경(大盤涅槃經)’이다. 임금은 여래(如來)요, 신하는 열반경이며, 코끼리는 불성(佛性), 장님은 모든 무명중생(無明衆生·어리석은 대중)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중국 송(宋)나라의 선사(禪師) 홍진(洪進)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를 만지고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홀연 눈이 밝은 이를 만나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衆盲摸象 各說異端 忽遇明眼人又作麽生)”라는 화두(話頭)를 던졌다. 인도에서 건너온 불교가 선(禪)불교로 진화한 대목이다.
탱화(幀畵) 가운데 코끼리를 씻기는 세상도(洗象圖)나 소상도(掃象圖)가 적지 않다. 송대에 등장해 명(明)대에 인기를 끌었으며 청(淸)대로 이어졌다. 호기심에서 시작해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文殊)보살에 대한 희구를 담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코끼리(象)를 다룬 성어는 적지 않다. 개의 입에서 상아를 뱉을 수 없다(狗嘴裏吐不出象牙·구취리토불출상아),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人心不足蛇呑象·인심부족사탄상), 뱀이 주제를 모르고 코끼리를 삼키려 한다(蛇欲呑象·사욕탄상).
서양 속담에도 코끼리가 등장한다. 방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房中大象)가 대표적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쉽게 꺼내지 못하는 껄끄러운 이슈를 말한다.
지난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다. “미·일 회담에 중국이 방안의 코끼리였다”는 AP통신의 제목처럼 양국 정상은 기자회견에서 중국을 20여 차례 언급했다. 코끼리 때문인지 미·일 관계가 부자(父子)에서 형제(兄弟) 관계로 바뀌었다는 평가다. 코끼리와 한 방(房)에 있는 한국은 장님이어선 안될 터다. 올해는 가쓰라 다로(桂太郞) 총리와 윌리엄 태프트 미 육군성(국방부의 전신) 장관이 밀약을 맺은 지 110주년이다.
신경진 중국연구소·국제부문 기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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