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週 漢字

[漢字, 세상을 말하다] 香嚴上樹<향엄상수>

bindol 2020. 8. 15. 07:05

향엄(香嚴·?~898) 스님이 말했다. “당신이 만약 나무에 올라 입으로만 나뭇가지를 물고, 양손은 가지를 붙잡지 않고, 발로는 나무를 딛지 않고 있었다고 하자. 때마침 나무 아래서 어떤 이가 달마가 서쪽에서 온 이유를 물었다. 대답하지 않으면 질문을 외면하는 것이고, 대답하면 나무에서 떨어져 생명을 잃게 된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불교 선종(禪宗)은 깨달음을 위해 화두(話頭)와 씨름한다 ‘향엄의 나무에 오르다’라는 향엄상수(香嚴上樹)는 선종의 유명한 화두다.

 


향엄은 당(唐)나라 말기의 승려로 이름은 지한(知閑)이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동안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백장청규(百丈淸規)로 이름난 선승 백장회해(百丈懷海)의 가르침을 받았다. 백장이 세상을 뜨자 위산영우(潙山靈祐)의 휘하에 들어갔다. 향엄의 그릇을 알아본 위산이 화두를 던졌다. “너는 백장이 하나를 물으면 열을 답하고, 열을 물으면 백을 답했다. 이는 이치와 지혜, 개념에 매달릴 뿐이다. 모두 쓸모 없다. 부모가 낳기 전 너의 본래 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은 무엇이냐.” 향엄은 방으로 돌아와 온갖 서적과 선사(先師)들의 어록을 뒤졌지만 답은 없었다. 위산에게 답을 물었다. “내가 너에게 답을 한들 그것은 나의 말이지 너의 것이 아니다”는 말만 돌아왔다. 실망한 향엄은 갖고 있던 온갖 책을 불태운 뒤 스승을 떠났다.

암자에 칩거해 수행하던 향엄은 어느 날 기왓장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에 일순 깨우침을 얻었다. 향엄격죽(香嚴擊竹)이란 고사다.

그렇다면 ‘향엄상수’에서 나무에 오른 이는 어떻게 대처해야 했을까. 철학자 강신주는 말문이 막힌 그를 도리어 침묵을 모르는 구업(口業)의 화신으로 해석한다. 한 스님이 “나무 위에 오른 일은 묻지 않겠다. 나무에 오르기 이전은 어땠나”라 묻자 향엄이 통쾌히 웃었다는 기록이 근거다. 손과 발로 나무를 잡은 뒤 나뭇가지에서 입을 떼고 내려와 땅에 발을 디딜 때 답이 나온다고 말한다. 말과 침묵 모두에서 자유로워지라는 뜻이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구업을 쌓은 언론인 출신이다. 화두 ‘향엄상수’는 말보다 행동을 가르친다. 만인지상(萬人之上)이 된다면 이를 어떻게 보여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