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칡덩굴을 뜻하는 갈(葛)과 등나무를 의미하는 등(藤)이 어우러진 말이다. 이 단어가 ‘서로 어긋나 싸운다(Conflict)’는 뜻으로 발전한 것 역시 두 나무의 속성과 관계 있다. 칡덩굴은 나무를 탈 때 오른쪽으로 감아 오르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는다. 두 나무가 같이 있다면 필경 어긋나고 싸울 수밖에 없다. 나무의 속성에서 인간사 이치를 간파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중국어 ‘葛藤(거텅)’엔 어긋나고 싸운다는 뜻이 없다. 칡뿌리와 등나무일 뿐이다. 오히려 한국어의 갈등에 가까운 중국어는 ‘모순(矛盾)’이다. 창(矛)과 방패(盾)가 합해진 이 단어는 춘추전국시대 법가(法家)였던 한비(韓非)가 쓴 한비자(韓非子)의 난일(難一)편에 뿌리를 둔다.
그 어원은 다음과 같다. 초(楚)나라 사람이 창과 방패를 팔고 있었다. 그가 창을 들어 말하길 “이 창은 너무 날카로워 어느 것도 막지 못합니다”고 했다. 이어 방패를 가리키며 “이 방패는 견고해 어느 것도 뚫지 못합니다”고 말했다. 이에 행인 한 명이 “그 창으로 방패를 찌른다면 어찌 되겠소?”라고 물으니 그 장사치는 답하지 못했다.
한비는 “같은 세상에 함께 존재할 수 없는 것(不可同世而立)을 가지고 우기는 사람이 많다”고 통탄했다. 스스로 서로 모순이 된다는 ‘자상모순(自相矛盾)’이 그래서 나왔다. 자가당착(自家撞着)이 같은 맥락의 단어다.
한비의 고사(故事)는 유가(儒家)의 형식주의를 겨냥한 말이었다. 유가가 내세우는 예(禮)는 속 내용도 없으면서 겉으로 꾸민 모양새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내용이 중요할 뿐 모양새는 그 다음이라는 게 한비의 생각이었다.
동남권 신공항을 놓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주민과 주민이, 국회의원과 국회의원이, 또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권 주자가 맞서는 양상이다.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이 물음에 한비는 이렇게 답한다.
“진(秦)나라 국군이 딸을 진(晉)나라 공자에게 시집 보냈다. 딸은 수수한 차림의 진(晉)나라 복식을 입혔고, 몸종 70여 명은 화려한 진(秦) 옷을 입혀 딸려 보냈다. 진(晉)나라 공자는 정작 예쁜 몸종만 좋아했고 신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진정 중요한 것은 내용인데, 모양새만 중시하다간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얘기다.
한우덕 기자 woodyha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漢字, 세상을 말하다] 모양만 중시하다간 일 그르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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