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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同盟·覇權 동맹·패권

bindol 2020. 8. 15. 08:09

중국 춘추시대 제환공(齊桓公)이 왕에 오른 것은 기원전(BC) 685년이었다. 그는 관중(管仲)을 재상으로 임명했고, 덕택에 제나라는 강국으로 거듭났다. 제환공은 이웃 노(魯)나라의 내란을 진압했고, 위기에 처한 연(燕)을 구하기도 했다. ‘중원의 경찰’이었던 셈이다.



BC 651년 제환공이 여러 제후를 지금의 허난(河南)성 쿠이추(葵丘)로 불러 모은다. 주(周)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도록 기획된 회의였다. 각 제후들은 피가 담긴 그릇을 돌려가며 충성과 평화를 다짐했다. 춘추시대 여러 차례 등장한 ‘회맹(會盟)’의 시작이다.



갑골문의 ‘盟’은 쟁반(皿)위에 소 귀(牛耳)가 담겨 있는 형상이다. 사람들이 신(神)에게 맹세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고대 자전인 설문(說文)은 “소 귀를 잘라 쟁반을 피로 붉게 물들이고, 쟁반 위의 피를 마신다”고 ‘盟’을 설명한다. 회맹을 주관하는 사람(盟主)은 귀를 땅에 묻은 뒤 참석자들에게 쟁반에 남아 있는 피를 돌려 마시도록 한 것으로 전해진다. ‘盟’은 혈맹(血盟), 동맹(同盟), 맹방(盟邦) 등에서 그 뜻이 온전히 이어지고 있다.


 


‘맹주’를 ‘패주(覇主)’로 격하시킨 사람은 맹자(孟子)다.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편은 “관중이 자신의 왕을 일컬어 패(覇)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글자 ‘覇’는 雨(비)와 革(가죽), 肉(고기)이 결합된 말이다.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면 살은 피부에 의지해 견뎌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살을 위협하는 비’는 곧 폭우였고, 여기에서 강함(强)과 폭력(暴)이라는 의미로 발전했다. 맹자가 제환공을 ‘패자’로 인용한 것은 그의 정치가 무력에 의존한 것이었을 뿐, 덕(德)을 바탕으로 한 왕도(王道)와는 거리가 멀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에게 제환공은 ‘착한 경찰’이 아니라 무력으로 이웃을 위협한 폭군이었던 것이다.



천빙더(陳炳德·진병덕) 중국군 총참모장이 지난 14일 김관진 국방부 장관 면전에서 미국을 강력히 비난한 것으로 전해졌다. 천 총참모장은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난했고, 한·미 동맹을 겨냥한 공세를 펼쳤다. 그가 거세게 비난한 미국은 과연 ‘착한 경찰’인 맹주일까, 아니면 폭력을 행사하는 패주일까? 혹 관점의 차이일 뿐 아니런가. 제환공이 그렇듯 말이다.





한우덕 기자 woodyha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漢字, 세상을 말하다] 同盟·覇權 동맹·패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