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週 漢字

[漢字, 세상을 말하다] 流水不爭先 유수부쟁선

bindol 2020. 8. 15. 08:10

한자 성어는 함축적이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한마디 말로 인생을 달관한 것과 같은 심오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래선지 정치인은 자신의 포부를 곧잘 한자 성어를 이용해 표현한다. 잘 보면 그가 지향하는 노선과 행보를 읽을 수 있다. 최근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한나라당 중앙당사 대표실에 걸었다가 떼어낸 휘호가 화제다.



척당불기(倜<513B>不羈). 네 글자 중 쉽지 않은 한자가 세 개나 된다. 기개 있을 척, 빼어날 당, 아니 불, 굴레 기. 기개가 있고 뜻이 커서 다른 사람에게 얽매이거나 굽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송(宋)나라 때 편찬된 운서(韻書·한자를 운에 따라 분류한 사전)인 ‘집운(集韻)’에 따르면 ‘척당은 큰 뜻을 말하며 혹은 희망이라고 한다(倜<513B>大志一曰希望也)’. 불기(不羈)와 관련해 사기(史記)는 ‘재주와 지식이 높고 원대해 가히 묶어둘 수 없음을 말한다(不羈言才識高遠不可羈係)’고 설명한다.


 


홍 대표는 이 말을 좋아해 지난 4일 당 대표로 당선된 뒤 연설에서 “척당불기의 정신으로 당의 위기를 헤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표실에 건 휘호 ‘척당불기’에서 사람 인(人)변으로 써야 할 ‘당(<513B>)’이 마음 심(心)변의 ‘당(<6203>)’으로 잘못 쓰여졌다는 것이다. 당(<6203>)은 ‘창’으로도 읽히며 ‘경황 없다’는 뜻이어서 홍 대표가 말하는 취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뒤늦게 오자(誤字)를 발견한 홍 대표 측은 ‘척당불기’ 휘호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다른 액자를 걸었다. 홍 대표가 좋아한다는 또 다른 성어인 ‘의자제세(義者濟世)’ 글자가 적힌 액자를 건 것이다. ‘의로운 자가 세상을 구한다’는 뜻이다.



사실 홍 대표는 한자 성어를 좋아해 여러 가지 휘호를 사무실에 걸어놓고 있다고 한다. ‘심광의원(心曠意遠:마음은 넓고 뜻은 멀리)’ ‘대도무문(大道無門:큰 도리나 정도는 거칠 것 없다)’ 등이다.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도 그중 하나다.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는 뜻이다. 프로 바둑기사는 이 말을 단번에 이기려 하지 말고 흐르는 물처럼 순리에 맡기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해석으론 ‘혼자만 가지 말고 함께 가자’는 뜻으로 풀이하는 게 좋을 듯싶다. 세상은 함께해야 아름다운 법이니까.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scyou@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漢字, 세상을 말하다] 流水不爭先 유수부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