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週 漢字

[漢字, 세상을 말하다] 白蟻·蚍蜉<백의·비부>

bindol 2020. 8. 16. 04:00

한자세상 8/1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의 일이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시솽반나(西雙版納)의 식물연구소를 시찰했다. 연구소 간부가 아름드리 나무를 툭 밀었다. 겉보기와 달리 힘없이 쓰러졌다. 저우 총리가 이유를 물었다. 간부는 “흰개미가 나무 속까지 좀먹었다. 겉보기는 멀쩡하다”고 답했다. 저우 총리는 “방안까지 잘 침투해야 한다. 홍콩에 흰개미를 보내라”고 지시했다.

홍콩 각계에 특무(特務)를 보낸 이른바 ‘흰개미(白蟻·백의) 정책’의 시작이다. 홍콩의 한 방송사가 2014년 방영한 역사 다큐멘터리 도입부에 나온 전직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의 증언이다. 인민해방군의 반월간지 ‘국방참고’는 “색깔 혁명의 흰개미 전술 책동을 경계하라(2015년 2월)”는 글을 싣고 “적은 용맹한 호랑이가 아닌 흰개미를 인터넷에 풀고 있다”며 “방화벽을 높이 세우라”고 촉구했다.

 


개미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닉슨 도서관에서 “공산 중국과 자유 세계의 미래”를 연설했다. “공산 중국을 바꾸지 않으면 그들이 자유세계를 바꿀 것”이라 했다. 이튿날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이 나섰다. 트위터에 “세계화된 세상에 중국을 노린 새로운 십자군 전쟁”이라며 “왕개미가 나무를 흔드는(蚍蜉撼樹·비부감수) 헛된 일”이라 평가절하했다.

왕개미는 당(唐)의 문장가 한유(韓愈)의 표현이다. 한유는 ‘장적을 부르며(調張籍)’라는 시에서 “이백과 두보의 문장은 아직 남아, 만 길 불꽃처럼 솟구친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아이들이, 어찌 함부로 헐뜯는가(李杜文章在 光焰萬丈長 不知群兒愚 那用故謗傷)/왕개미가 큰 나무를 흔드니 제 분수를 모름이 가소롭고나. 나는 이백·두보보다 늦게 태어나 고개 들어 멀리 바라볼 뿐(蚍蜉撼大樹 可笑不自量 伊我生其後 擧頸遙相望)”이라 읊었다.

화춘잉은 한유 아닌 마오쩌둥(毛澤東)을 인용했다. 마오는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공산 중국 반대를 외치자 “만강홍·궈모뤄 동지와(滿江紅·和郭沫若同志)”를 지었다. “개미가 홰나무 속에서 나라 크다 자랑함이 왕개미가 나무 흔들겠다는 양 가소롭다(螞蟻緣槐誇大國 蚍蜉撼樹談何易)”며 “인류에 해를 끼치는 모든 변절자를 없앨 때 세계가 태평해지리(要掃除一切害人蟲 全無敵)”라고 했다. 문제는 한반도다. 흰개미·왕개미 청정지대가 아닌 듯 여겨져서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