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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成均 성균

bindol 2018. 7. 3. 08:22


중국에서도 고대 원시사회가 발전하면서 계급이 형성됐고, 부족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부족 지도자는 백성들에게 무엇인가를 알려야 했고, 또 가르쳐야 할 일이 생겼다. 지도자는 부족 사람을 광장으로 모아 집회를 갖고 제례(祭禮)·훈육(訓育) 등을 실시했다. 요순(堯舜)시대에 들어 국가의 틀이 잡히면서 이 같은 ‘광장 활동’은 교육으로 발전했고, 이를 일컬어 ‘성균(成均)’이라 했다. ‘성균’은 중국 고대의 학교였던 셈이다.

이는 주(周)나라 왕실의 제도를 담은 주례(周禮)에서 확인된다. 이 책의 ‘춘관(春官)·대사악(大司樂)’편에는 “대사악은 ‘성균의 법(成均之法)’을 관장한다. 이로써 왕실의 학습과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고, 왕실 자제들을 모아 공부를 시키게 된다(以治建國之學政, 而合國之子弟焉)”고 했다. 대사악은 또 국가의 주요 제례나 음악(禮樂)을 담당했다. 예와 악으로 백성을 교화시키는 일이 곧 ‘성균’이었던 것이다.

전한(前漢) 시기 유학자였던 동중서(董仲舒)도 ‘성균은 오제 시기의 교육이다(成均, 五帝之學)’라고 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제후(諸侯)국의 최고 교육기관을 일컬어 성균관(成均館)이라고 했다. 황제 나라의 교육기관이었던 벽옹(<8F9F>雍) 또는 국자감(國子監)보다 한 단계 낮은 이름이었다.

이 구도는 고려·조선 시대에도 적용됐다. 고려는 992년 성종 때 국자감을 세웠으나 1308년 원(元)나라의 압박을 받아 성균관으로 ‘강등’해야 했다. 조선은 1398년 한양(漢陽) 숭교방(崇敎坊·현재 명륜동)에 성균관을 세우고 500여 년을 이어왔다. 고종 때는 황제국답게 성균관을 ‘벽옹’으로 바꾸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풍전등화의 국운 앞에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성균관은 1910년 한·일합방늑약 이후 경학원(經學院)으로 바뀌는 치욕적인 수난을 당했다. 그러다 해방 직후 성균관대가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성균’의 의미를 ‘成人材之未就, 均風俗之不齊’(아직 성숙하지 못한 인재를 성취시키고, 고르지 못한 풍속을 가지런하게 한다)라고 해석한다.
‘인재를 발굴해 그 뜻을 펴게 하고(成人材), 교양을 닦아 풍속을 고르게 하는 것(均風俗)’이야말로 우리나라 교육의 참뜻일 터다.

한우덕 기자 woodyha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漢字, 세상을 말하다] 成均 성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