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이준식의 한시 한 수]〈12〉달빛 속의 혼술

bindol 2020. 8. 31. 18:55

月下獨酌 / 李白(달빛 속의 혼술)

天若不愛酒 천약불애주
酒星不在天 주성부재천
地若不愛酒 지약불애주
地應無酒泉 지응무주천
天地旣愛酒 천지기애주
愛酒不愧天 애주불괴천
已聞淸比聖 이문청비성
復道濁如賢 부도탁여현
賢聖旣已飮 현성기이음
何必求神仙 하필구신선
三杯通大道 삼배통대도
一斗合自然 일두합자연
但得酒中趣 단득주중취
勿爲醒者傳 물위성자전

하늘이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주성이란 별이 하늘에 없었겠고
땅이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땅에도 분명 주천이란 지명은 없었으리
천지가 다 술을 사랑했으니
술 좋아하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
청주는 성인에 비견된다 들었고
탁주는 현자와 같다고들 말하지
성인 현자가 다 술을 마셨거
굳이 신선을 찾을 필요 있으랴
술 석 잔에 대도와 통하고
술 한 말이면 자연과 합일되지
술에서만 얻는 이 즐거움
깨어 있는 이들에겐 알리지 말지어다

 

 

술은 한시의 영원한 주제
음주시의 대표주자라면 단연 이백을 꼽을 만하다
“자고로 성현들은 다 적막하지만 술 마신 자만이 그 이름을 남겼노라”
고 했던 이백. 두보는 그를 “술 한 말 마시는 동안 시 백 수를 지었고,
술집에 곯아 떨어져 황제가 불러도 나 몰라라 했던
酒中仙(술을 마시고 세상일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이라 불렀다.

이 시는 한 애주가의 지독한 음주 찬가다.
예나 지금이나 기쁘건 슬프건, 설령 일 없이 무료할지라도
주당의 음주 핑계는 막무가내다.
그런 핑계를 이백이 나서 논리적으로(?) 방증한다. 하늘과 땅, 성현, 대도의
통달과 자연합일 등을 동원해 애주의 정당성을 뒷받침한다.
청탁 불문의 근거를 성인, 현자에서 찾은 건 애교요, 술 없이 사는 이들에게
취중의 즐거움을 비밀로 하라는 훈계는 순진한 선동이다.
이 시는 정치적 곤경에 처해 있던 마흔 초반에 지었다.
따라서 취중의 즐거움이란 것도, 또 성현과 신선을 끌어들인 것도
기실 내면의 울적함을 취기로 달래보려는 일종의 자기 마취다.
술은 불우한 시인을 마취시키기도 하지만 술 없는 삶이란 또 얼마나 삭막했으랴.
이 시는 4수로 된 연작시 가운데 제2수다.


-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