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이준식의 한시 한 수]〈11〉시인의 눈물

bindol 2020. 8. 31. 18:31

登幽州臺歌 / 陳子昻

前不見古人 後不見來者
念天地之悠悠 獨愴然而涕下
전불견고인 후불견래자
염천지지유유 독창연이체하

앞으로는 옛사람 보이지 않고
뒤로는 올 사람 볼 수가 없네
천지의 아득함을 생각하면서
홀로 비통에 잠겨 눈물 흘리네

 

암울한 현실을 마주한 시인의 비탄을 노래했다.
옛사람 혹은 미래에 올 어떤 인물, 그는 아마도 인재를 알아보는 명군이거나
아니면 그 명군을 보좌하여 마음껏 자신의 웅지를 펴는 영웅일 것이다.


하지만 망망한 천지 그 어디에도 자신을 인정해 주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으니
시인은 암담하기만 하다. 춘추전국시대 연(燕)나라 소왕(昭王)은 제(齊)나라가
침공해 오자 천하의 인재를 영입하는 데 주력했고,
병법에 능통했던 낙의(樂毅)를 발탁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유적지가 바로 유주대, 지금의 베이징(北京) 일대다.


시인은 아마도 낙의의 영웅적 기개를 자임했을 것이고 또 소왕 같은 명군의
부재에 낙담했을지 모른다. 재능은 있으되 현실 정치로부터 소외되었던
역대 문인들이 이 시를 애송해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개 시에서 금기시하는 지(之), 이(而) 같은 허사도 피하지 않았고,
1구 5언의 고정된 격식도 허물었다.
소외의 상처를 드러내고자 파격마저 감수한 것이리라.


퇴계 선생의 ‘도산십이곡’ 중에 이 시와 발상은 비슷하지만
주제는 판이한 시조가 있다.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봬.
고인을 못 봬도 예던 길 앞에 있네. 예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예고 어쩔꼬.”
‘예다’는 ‘가다’의 옛말이다. 옛사람을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을
피력한 건 진자앙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퇴계는 옛사람이 이미 아득한 과거로 사라졌어도 그 자취가
남아 있다는 데서 희망을 찾는다. “예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예고
어쩔꼬”는 옛사람이 실천했던 대도를 충실히 따르리라는 각오다.
절망감에 그저 눈물만 흘렸던 진자앙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