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느긋함의 역설[이준식의 한시 한 수]〈21〉

bindol 2020. 9. 1. 08:51

江村 / 杜甫

淸江一曲抱村流 청강일곡포촌류
長夏江村事事幽 장하강촌사사유
自去自來堂上燕 자거자래당상연
相親相近水中鷗 상친상근수중구
老妻畵紙爲碁局 노처화지위기국
稚子敲針作釣鉤 치자고침작조구
但有故人供祿米 단우고인공녹미
徵軀此外更何求 징구차외경하구

 

맑은 강 한 굽이 마을 끼고 흐르고
긴 여름 강촌은 만사가 느긋하다
제멋대로 들락거리는 대들보 위의 제비
서로 사이좋은 물 위의 갈매기들
늙은 아내는 종이에다 바둑판 줄을 긋고
어린 자식은 바늘 두들겨 낚싯바늘 만드네
봉급 받아 쌀 대주는 친구 있으면 그만
하찮은 몸이 이것 말고 무얼 더 바라리

 

 

만사란 게 대단할 것도 없다. 제비와 갈매기의 정겨운 모습,
아내와 자식의 여유로운 몸짓을 지켜보는 소소함이 전부다.
하지만 이 느긋함조차 양식 대주는 친구 덕분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왠지 마음이 짠하고 아리다.

그런 도움도 결국은 임시방편에 불과할 터.
느긋하다는 말이 오히려 앞날의 불안을 예감한 逆說처럼 느껴진다.

두보 일생에서 그나마 안정적이었다고 할 초당 생활을 도운 친구는
당시 成都尹겸 節度使였던 엄무(嚴武). 그러나 그 인연마저 5년 만에
끊어지자 두보는 다시금 유랑의 길을 나서야 했다.

“표표히 떠도는 내 신세를 무엇에 비기랴/천지간에 외로운 갈매기라네.”
성도를 떠날 무렵 시인이 떠올린 갈매기의 이미지는 이렇게 변해 있었다.
‘한 번 울면 천하가 놀라고 한 번 날면 구만리를 나는 붕새’가
되고자 했던 두보. 그가 맞닥뜨린 현실은 냉혹했다.

두 차례 과거에 낙방했고 현종에게 충정을 담은 문장을 세 차례나 올렸으며,
뭇 세도가들을 향해 自薦의 장편시를 10여 차례 보냈지만 끝내 그에게는
초당에서의 느긋함 그 이상의 인생 역전은 없었다.


-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