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마흔여섯의 과거 급제[이준식의 한시 한 수]〈32〉

bindol 2020. 9. 1. 13:39

登科後 / 孟郊(급제 후)

 

昔日齷齪不足諺 석일악착부족언
今朝放蕩思無涯 금조방탕사무애
春風得意馬蹄跌 춘풍득의마제질
一日看盡長安花 일일간진장안화

지난날 아등바등 살았던 걸 자랑할 건 없고
이제야 자유분방한 심사 거칠 게 하나 없네
의기양양 봄바람 속을 말 타고 내달리며
하루 새에 장안의 꽃을 다 돌아본다네

 

과거 급제 직후 주체할 길 없이 달뜬 환희가 시구 도처에 넘쳐난다.
당시 시인의 나이는 마흔여섯. 결코 이르다고 할 수 없지만
진사과는 쉰 살에 급제해도 젊은 셈이라는 말이 나돌던 시절이니
그 벅찬 감회가 오죽했으랴.


두 차례나 낙방의 고배를 마신 시인이지만 더 이상 지난날의 고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따지고 싶지는 않다.
장안의 봄기운을 만끽하며 의기양양 말을 몰아 내달리듯
이젠 거침없이 내 기개를 떨쳐보리라.


당대에는 과거에 급제한 진사를 위해 다양한 경축 행사를 벌였는데
그중 하나가 수도 장안의 유명 화원을 유람하는 것이었다.

장안 거리가 제아무리 넓다 해도 지금 이 기세라면
하루아침에 다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절로 용솟음쳤을 터다.

스물일곱 비교적 이른 나이에 급제한 백거이의 감격도 다를 바 없었다.
십년 힘들게 공부하여 단박에 얻은 과분한 명성./…
또래 친구 예닐곱이 장안 떠나는 나를 전송하는 자리,/
휘장 두른 수레는 떠날 채비 갖추었고 온갖 악기들이 이별곡을 연주하네./
뜻을 이루었으니 이별의 아픔 사라지고/
주흥 한껏 오르니 먼 길조차 가뜬하다”고 했다.


제3구의 춘풍득의(春風得意)는 문자 그대로 봄날 훈풍 속에서
득의양양해하는 모습을 말하기도 하지만,
황제의 은혜(춘풍)를 입어 과거에 급제(득의)했으니
장차 탄탄대로를 내달릴 것이라는 암시도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성어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는 뜻도 된다.
주마간산을 중국에서는 주마간화(走馬看花)로 쓰는데
이 역시 이 시에서 유래했다.


-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