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참새의 소망[이준식의 한시 한 수]〈56〉

bindol 2020. 9. 2. 10:38

野田黃雀行 / 曹植(들판의 참새)

 

高樹多悲風 海水揚其波 고수다비풍 해수양기파
利劍不在掌 結友何須多 이검부재장 결우하수다
不見籬間雀 見鷂自投羅 불견리간작 현요자투라
羅家得雀喜 少年見雀悲 나가득작희 소년견작비
拔劍捎羅網 黃雀得飛飛 발검소라망 황작득비비
飛飛摩蒼天 來下謝少年 비비마창천 내하사소년

 

높은 나무엔 소슬한 바람 잦고 바닷물에는 파도가 드높기 마련
예리한 칼 손에 없으면서 굳이 많은 친구를 사귀어야 할까
울타리 속 참새가 매를 보고는 그물에 뛰어드는 걸 보지 못했나
그물 친 자는 참새 잡아 좋아라 해도 소년은 참새 보며 서글퍼하네
칼을 뽑아 그물을 베자 참새는 훨훨 날 수 있었지
창공을 높다랗게 날아가다가 내려와 소년에게 고맙다 하네

 

曹操의 아들 조식은 비운의 황자였다.
권력 다툼에서 형 曹丕에게 밀린 뒤 측근들이 줄줄이 죽임을 당했고
그 자신도 핍박 속에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일곱 걸음 안에 시 한 수를 짓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위기도 감내해야 했다.
그 처지는 영락없이 날 선 찬바람에 내팽개쳐진 높은 나뭇가지,
엄혹한 바다의 드센 파도에 내몰린 형세였다.

무장해제당한 권력자가 새 친구를 사귄다는 게 얼마나 위험했으랴.
황자로서 천하 경영을 꿈꾸다 영락했으니 자신도 측근도 다 울타리 속 참새 신세인 것을.
호시탐탐하는 매의 매서운 눈길을 피하다 제 발로 그물 속에 갇히고 만다.

그물을 끊어 참새를 구출해주는 소년의 등장은 시인의 속절없는 꿈에 불과하다.
울울한 심정을 떨쳐버리려는 시인의 몸부림은 창공을 마음껏 날아오르는
참새의 소망으로나 위로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들판의 참새’는 한대 민요에서 유래한 시제라 이백 등 후대 시인들이 즐겨 사용했다.
강자에게 구박받거나 쫓기는 微小한 존재, 그게 참새의 숙명이었다.


-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