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꽃 그리는 마음[이준식의 한시 한 수]〈54〉

bindol 2020. 9. 2. 10:02

湖上雜感 / 袁枚(호반의 상념)

 

桃花吹落杳難尋 도화취락묘난심
人爲來遲惜不禁 인위래지석불금
我道此來遲更好 아도차래지갱호 ​
想花心此見花深 상화심차견화심

 

복사꽃 다 떨어져 흔적도 찾기 어려우니
사람들은 뒤늦게 온 걸 못내 아쉬워한다
그래도 난 늦게 온 게 더더욱 좋은 것이
꽃 그리던 마음이 꽃구경보다 더 절절했기 때문이지

 

중국 고전시의 미덕은 온유돈후(溫柔敦厚)에 있었다.
그것은 따스하고 도타운 진심을 바탕으로 善을 이끌어내는 게 본분이었고
공자 이래의 오랜 전통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괴이하거나 교만하거나 음란하거나 심지어 익살스러운
경향마저도 멀리하려 했다. 원매는 달랐다.
그는 자유인을 자처하면서 복고풍이나 형식 지상주의를 경계했고
진솔한 내면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의 시심(詩心)은 따라서 무한정 열린 시각을 지향했다.
시기를 놓쳐버린 상춘 나들이,
텅 빈 꽃자리를 마주하면 아쉽고 애달픈 게 인지상정이다.

꽃 지고 열매 맺는 자연의 섭리가 괜히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이형기 ‘낙화’)를
흥얼대며 흔연히 돌아서기가 그리 쉬운가.

하지만 시인은 마음속에 갈무리하는 것으로 이미 꽃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

화려한 외양보다는 그 이면에 자리한 싹틈과 몽우리와 개화와 낙화까지의
과정 하나하나가 다 기대와 설렘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절절함이 있었기에 꽃자리를 보아도 허허롭지 않다.
상상이 때로 온전히 드러난 현상 그 이상의 풍요와 여운을 주기도 하는 게 세상 이치다.

열정적인 사랑 못지않게 첫사랑 혹은 짝사랑이 더 간절하고 애틋할 수 있듯이.

 
-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