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도연명의 갈등[이준식의 한시 한 수]<60>

bindol 2020. 9. 2. 11:47

飮酒 / 陶潛

 

有客常同止 유객상동지
趣舍邈異境 취사막이경
一士長獨醉 일사장독취
一夫終年醒 일부종년성
醒醉還相笑 성취환상소
發言各不領 발언각불령
規規一何愚 규규일하우
兀傲差若穎 올오차약영
寄言酣中客 기언감중객
日沒燭當炳 일몰촉당병

 

두 나그네 늘 함께 지내지만
취사선택하는 건 영 딴판이다
한 사내는 언제나 저 홀로 취해 있고
한 사내는 평생토록 말짱 깨어 있다
말짱하니 취했느니 서로 비웃으면서
얘길 해도 서로가 이해하지 못한다
구차하게 얽매여 사니 우둔한지고!
꿋꿋이 제 뜻대로 하는 게 외려 더 현명할 듯
거나하게 취한 자여 날 저물거든
촛불 밝혀서라도 더 실컷 마시게나

 

 

취향과 행동이 판이한 두 자아가 시인의 내면에서 갈등한다.
하나는 매사에 소심하고 신중하다.

 

세상사에 순응하면서 궤도에서 벗어날까 전전긍긍한다.
말짱하게 깨어 있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현실의 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껏 즐기며 산다. 늘 저 홀로 취해 있다.

 

둘은 상대의 방식을 서로 비웃을 뿐 대화조차 통하지 않는다.
둘의 갈등은 그러나 금방 해소된다.

 

말짱한 정신으로 버티려면 비굴도 감수해야 할 것이니 얼마나 우둔한 삶인가.
취하면 취하는 대로 내 신명을 좇아 사는 게 차라리 현명할 듯하다.

 

그런즉 이미 낮부터 취해 있는 자아에게 권유한다.
해 지면 촛불을 밝혀서라도 통음하라고.


시인의 진심은 과연 무엇일까.
그는 진·송(晋·宋)이 교체되는 암흑기를 살면서
부패한 정치와 피비린내 나는 군벌의 쟁투를 혐오했기에
말짱한 정신으로 그 탁류에 고분고분 휩쓸릴 수는 없었다.

 

깨어 있다는 것이 기실은 아둔하기 그지없는 착각일 테니 취해 있는 게
오히려 지혜롭다는 역설(逆說)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위악적 일탈 같기도 한 도연명식 삶의 지향을 범속한
잣대로 가늠하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