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

[이종묵의 ‘한시 마중’]<5>낙엽 밟는 소리

bindol 2020. 9. 12. 10:15

오동잎 떨어지는 소리에 가을이 오고 낙엽이 뒹구는 소리에 가을이 갑니다. 호젓한 암자 하나 바위를 등지고 서 있습니다. 그곳으로 고불고불 오솔길 하나 나 있습니다. 산속이라 벌써 찬바람이 매서워 오구나무 잎이 바삐 붉게 물들기 시작합니다. 그때 어디선가 낙엽 밟는 소리가 들립니다. 시인이라면 가는 가을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좋은 시를 짓고자 찾아온 것이겠지요.

서울대가 있는 관악산 기슭 자하동(紫霞洞)에 살았고 그 붉은 노을을 사랑하여 자하(紫霞)라는 아름다운 호를 사용한 신위(申緯·1769∼1845)의 작품입니다. 그는 시와 글씨, 그림에 모두 능하여 삼절(三絶)로 일컬어졌습니다. 낙엽을 무척 좋아하여 여러 편의 시를 지었는데 이 시는 그중 한 편입니다.

 

개울가 맑은 물 위에 떠 있는 붉은 단풍잎, 불을 지펴 차를 끓이고 온기를 돋워주는 낙엽, 영롱하게 물들어 시인의 창가에서 날리는 단풍잎, 황금빛 국화와 어우러져 은자의 눈을 즐겁게 하는 단풍잎 등 10편의 시를 지어 단풍의 운치를 시로 꾸몄지요. 이것이 시인의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신위가 밟고 간 단풍잎 떨어진 돌길은 시를 찾는 길 심시경(尋詩徑)입니다. 1813년 황해도 곡산 땅에 부사로 나갔을 때 맑은 물에 연꽃이 떠 있는 청수부용각(淸水芙蓉閣)과 탑상보다 조그마한 누각 소어탑루(小於榻樓), 벼루를 씻는 못 세연지(洗硯池)에서 시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걷던 길은 심시경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신위는 그로부터 20년 후인 1833년, 낙엽 지는 도성 안의 돌길을 심시경으로 삼았습니다. 낙엽을 밟노라면 누구나 시인이 될지니, 그가 걷는 길이 바로 심시경이겠지요.